행복론
올해 1월 우리 가족은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작년 늦은 여름인 9월 말이었다. 이사 갈 집을 이미 여러 군데 알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건이 맞지 않아 지쳐갈 무렵이었다. 이 집 저 집 보면 볼수록 우리들의 집에 대한 취향이 확실해지고 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야 하고 자연 친화적이어야 했다. 그러던 중 부동산 중개인과 연락을 하고 집을 보기 위해 살던 곳으로부터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왔다. 볼 집에 가까워질수록 큰 건물들은 없어지고 넓은 논밭이 펼쳐졌다. 드디어 집이 있는 마을에 들어섰고 큰 건물 하나 없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점심을 먹지 못하고 왔는데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어서 보이는 김밥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엄청 독한 모기에게 다리를 한방 물렸다. 이렇게 시작된 첫 방문을 시작으로 지금의 우리 집과 만나게 되었다.
이사 온 곳은 살던 곳보다 북쪽에 자리 잡은 지역이라 기온이 더 낮았다. 하필 이사를 들어오게 된 시기가 가장 추운 때였다. 주변의 많은 나무는 겨울이라는 계절 속에서 죽은 고목처럼 차갑게 서 있었다. 집 앞의 논밭은 곡물을 베고 난 후의 허전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황량했다. 이런 들판을 통해 무섭게 불어오는 찬 바람은 뼛속 마디마디를 쑤시고 들어와 아프게 했다. 조용한 것이 좋아서 선택했던 집 주변은 추워서 그런지 다니는 사람들이 더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정말 그야말로 적막했다. 집 식탁 의자에 앉아있으면 외딴 행성에 나 홀로 남겨진 것처럼 조용하여 이상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내려갔던 사람들의 발소리가 그리워졌다. 건너편 집에서 들려왔던 어린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유난히 추위를 힘들어하는 나는 새로운 곳에 대해 낯섦이 더해져서 더 춥게 느껴졌다. 밤에는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잠을 설치고 편하게 몸을 누일만한 곳을 찾아 배회하곤 했다. 우리 집 반려견이 자기 침대에 누워 동그란 눈을 굴리며 나의 가는 곳마다 쳐다보고 있다. 그러고는 큰 숨을 내쉬곤 한다. 그 아이의 큰 숨이 분명 나를 한심하다고 하며 쉬는 한숨일 거로 생각하며 자책하곤 했다.
이렇게 며칠 새 집알이를 하던 중 이삿짐 속에서 반가운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하고 마치 집을 나갔던 강아지가 돌아온 것처럼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전기장판. 이사하느라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전기장판이다.
작년에 친정엄마는 어느 날 우리 집에 성인 몸 하나 누일만한 크기의 얌전하고 다소곳한 느낌의 분홍색 천으로 덮인 전기장판을 가져오셨다. 크기가 적당해 소파에도 놓고 추워서 얼어있는 몸을 녹이고 잠을 잘 때 침대로 옮겨서 피곤한 몸을 풀어주곤 해서 너무나 아끼던 물건이었다.
발견한 즉시 바로 전기장판을 연결하고 그 위에 앉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이 든든하여졌다.
참 다행이다. 내 몸 하나 누일만한 전기장판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