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우리 집 반려견은 요즘 자신이 산책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아주 강하고 확실하게 한다. 그 좋아하던 간식도 주자마자 그냥 바닥에 뱉어버리고 본인의 외출용 잠바와 산책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나를 그 큰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면서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한다. 그 애절한 눈빛을 도저히 마다할 수가 없다.
‘그래 알았어. 우리 이제 나가자. 엄마 준비할 동안 잠깐만 기다려~’ 하고는 최대한 빨리 나갈 채비를 갖춘다. 준비하다가 어딘가에서 전화가 와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지체되는 시간을 우리 반려견은 인내를 가지고 전혀 꺾이지 않았다는 의지를 담은 강렬한 눈빛을 던지며 내 옆에서 기다린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나도 그 아이도 나갈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얼른 나가자고 앞 두 발을 들고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고 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서 네발을 땅에 강하게 디디고 서서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저함 없이 걸어 들어가서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눈을 고정하고 선다. 드디어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출입문으로 향해 가는 우리 콩이.
하지만, 자동문인 출입문은 아무리 빨리 그 앞에 선다 해도 사람만큼의 키와 등치를 가지지 않는 한 열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풀이 바로 저 유리문 밖에 있는데 왜 이 문은 열리지 않는 거야. 속상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출입문 앞에 서니 그때서야 문은 스르륵 열린다.
문이 열리자 바로 직전까지 반려견의 행동에 집중해 있었던 나를 사로잡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햇볕이다. 따스한 햇볕.
그렇다. 예전에 여러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충만하게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내 마음을 파스텔 색조의 행복으로 물들이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따스한 햇볕. 그 햇살이 내리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색상이 한결 밝아진다. 톤 업된다. 나의 마음도 그 햇살을 마주하자마자 한결 밝아졌다. 마치 진한 물감이 한지에 떨어진 후 사방팔방으로 서서히 번져나가는 것 같다.
내 마음은 어느새 화사해졌다.
‘아. 행복하다.’
산책하며 햇살이 만든 여러 자연물의 그림자들도 아름답다.
이렇게 어느새 따스해진 바깥공기를 우리 집 콩이는 먼저 알아차렸는가 보다. 그렇게 산책을 하자고 했던 걸 보면 말이다. ‘콩이야, 고마워. 엄마에게 이런 선물을 줘서. 네 덕분에 오늘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었던 따스한 햇볕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어. 내 마음에 햇살이 가득 번졌듯이 네 마음에도 화사함이 번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따스한 햇볕이 지어낸 화사함이 내 마음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