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고 꿈을 꿔 본다
수업 종이 쳤는데도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얘네들이 어디 간 거지? 네댓 명이 보일 뿐이다. 교실이 텅텅 비어 있다. 방학 동안 칠판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덕지덕지 종이가 붙어 있고 중간 어디쯤인가는 찢어져 있다. 말이 안 된다. 근데 도대체 누가 개학날 이렇게 큰 행사를 정한 거야? 공개수업이라니 어이가 없다. 학부모님 열 분 정도가 교실 뒤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애들은 없고 칠판은 찢어져 있고 오늘 공개수업인 줄 몰랐고.
칠판을 허겁지겁 정리하며 여학생에게 PPT를 몇 장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첫 번째 슬라이드에는 GAME 철자 네 개를 크게 써 달라고. 두 번째 슬라이드엔..... 무언가를 만들어서 성의라도 보여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느릿느릿 들어온다. 학부모님은 의자가 덜컹거린다고 바꿔 줄 수 있냐고 한다. 아! 어떡하지. 1학기 동료 장학도 망했는데 학부모 공개 수업까지 망하는 건가. 올해 왜 이런 거지? 아 슬라이드.... 여학생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선생님, 또 뭐해요??"
"아니, 그거 그렇게 말고 좀 더 글자 굵게..... "
"그리고 또 뭐요?"
"........"
아... 아... 입이 안 떨어진다. 입이.... 말이 안 나온다. 왜 이러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눈도 지그시 감아 보았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신 차려!!!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디지??? 눈앞이 하얬고 여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집이었다. 분명 교실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6시 30분. 꿈이었다.
'그렇지 올 것이 오고야 말았지!'
올해는 안 꿀 줄 알았다. 원 없이 쉬었으니, 덥다는 핑계로 책만 붙들고 있었으니, 이번만큼은 편안하게 개학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또 악몽을 꾸고야 말았다.
신기할 정도로 개학을 며칠 앞두고 항상 꿈을 꾼다. 반 전체 학생들이 나를 외면하는, 텅 빈 교실에서 학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패싸움을 하는.... '안 돼!!!!' 하며 발버둥을 치다가 깬다. 다시 긴장 모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024년 8월 22일, 그러니까 작년 오늘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3일 뒤 8월 25일부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끄적여 놓았던 글을 다듬어 올렸고,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도 틈틈이 올렸다. 브런치 북을 한꺼번에 두 개씩이나 만들었고, 계획도 없이 주제도 없이 두서도 없이 글 발행을 누르고 좋아라 했었다. 브런치 팝업 스토어에 가서 결심했다. 꾸준히 글을 쓰겠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브런치와 멀어져 버렸다. 학교 이야기는 아예 쓰지도 못했다. 꼭 남기고 싶었던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글감이 있었는데. 이번 방학에 밀린 글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그렇게 2학기를 맞이한다. 이번 학기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계획 중이니까. 지난 6월 말, 명퇴 수요 조사 공문에 나의 인적 사항을 올렸다. 말 그대로 수요 조사일 뿐이라고, 찬찬히 잘 생각해 보라고 교감님이 메시지를 주셨다. "올해가 특별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생각한 지는 몇 년 됐습니다. 충분히 고려해 보겠습니다. 염려 감사합니다." 짧고 굵직하게 답장을 했다.
교사는 나의 꿈 중 하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소외되는 아이들을 다독여 주고, 그렇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특히나 차별을 밥 먹듯이 하던 선생님들에게 분노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공정한 교사이고 싶었다. 그깟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만함으로 가득한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바랐던 공정함은 때로는 누군가에겐 인색함이 되어 있었다. 약자가 있는 교실에선 목적도 방향도 잡지 못한 채 흔들렸고 표류했다. 정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학생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념과 의지도 사라져 버렸고, 어느 순간부턴 이도 저도 아닌 나약한 교사가 되어 버렸다.
이제 교실마다 태블릿 보관함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코딩을 배운다. 활자로 인쇄된 자료는 힘들어 한지 이미 오래전이고, 전자기기를 활용한 수업에만 눈을 반짝인다. 영상 자료에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 자료는 점점 더 반짝여야 하고, 더 빨리빨리 넘어가야만 한다. 핵심만 간단하게 요약된 문장을 좋아하고 설명이 길어지면 따분해한다. 이제 아이들은 나와 너무 멀어져 버렸다.
나의 아이들에게 이번 학기가 초등학교의 마지막 시간이듯 나 역시 마지막이지 않을까. 여기저기 명퇴를 쓸 거라 설레발을 치고 다녔다.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더욱 쓴맛을 보고 너덜너덜해질까 봐. 예쁜 후배는 아쉬워했고, 선배는 충동적인 거 아니냐며 걱정했다.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를 콕 집어 주었다. 너는 경력에서 밀릴 수 있다고. 내년 2월이 아니라면 그다음엔 8월이 되겠지.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있는 것도 복일 텐데 그 복이 나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올해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참 기특하다. 힘든 환경 속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지만 인내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고, 나의 뜻에 잘 따라주고 있다. 다섯 번째 근무지에서 24년 차 경력을 맞이하고 있는 나는 참으로 다양한 이들을 만났고, 내 인생엔 두 번 다시 없었으면 하는 많은 일을 경험했다. 비록 꼭 지켜내리라 다짐했던 신념도 의지도 꺾여 버렸지만 나의 그릇은 아주 조금은 깊고 단단해졌으리라.
꿈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고백이 되어 버렸다. 오늘 쓴 이 글로 인해 나는 이번 학기를 아주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별일 없이 나의 아이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싶다. 나의 마지막 교직생활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곳에 남기고 싶었던 글도 -비록 생생함은 덜할지라도- 너무 늦지 않게 기록하고 싶다.
조금씩 계획을 세워 보려 한다. 이날을 위해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누가 나를 불러 줄지는 모를 일이다. 나를 대변해 주던 수식어가 사라지는 것도 아주 많이 두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겪어야 할 일이고,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모든 일은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니까.
꿈은 반대라고 했다. 어제는 악몽을 꿨지만 내일은 예쁜 꿈으로 채워지리라. 그 어느 때보다 멋진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 순간순간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내가 되리라.
(소곤소곤)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다른 곳보다 개학이 늦어요. 방학을 늦게 했거든요. 저는 또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오손도손하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D
이번 방학은 원 없이 독서로 불태웠어요. 덕분에 아이들에게 들고 갈 선물이 생겼고요.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오네요. 애들 개학했으니 이제 나는 방학이라는. 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