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못 합니다

날마다 인생을 배웁니다

by 글꽃향기


"죄송합니다. 저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일이 생겨서요. 출근을 못 하게 됐어요. 죄송해요."

"알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혹시나 작년처럼 강사 채용을 다시 하게 될까 봐, 3월 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강사 두 분의 최종 합격 서류며, 비밀 유지 서약서며 모두 스캔을 떠서 결재를 다 받아 놨는데. 시간표도 강사님의 일정을 고려해서 확정했는데. 3월의 마지막 주, 확인차 안부를 물을 겸 넣은 전화가 '출근 못 한다'는 답변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작년처럼 합격 소식을 받자마자 출근을 못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계약서까지 다 쓰고, 그것도 출근을 일주일 앞두고? 이건 말이 안 된다. 내 귓구멍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전화를 넣었다.





"며칠 못 나오신다는 거 아니고, 아예 출근을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제발, 다음 주만 못 나온다는 말이었기를. 내가 너무 당황해서 전화를 급하게 끊은 것이기를 바라고 바랐다.

"네, 죄송합니다. 집안에 일이 생겼어요."

"……."

"알겠습니다."





내 귓구멍은 정상이었다. 이 황당하고 슬픈 소식을 업무 부장님과 장감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는데 힘이 빠져서 도저히 교무실까지 내려갈 수가 없었다.

'내가 2월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새 학년 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억울했다. 2주간 전전긍긍하던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진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일단 메시지로 이 황당한 소식을 알리자'

메신저를 열고, 부장님, 교감님, 교장님 세 분을 수신자로 지정했다.






안녕하세요.

** 업무 관련 연락드립니다.



별월 별일부터 근무 예정인 ****강사님이 출근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을 조금 전에 들었습니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은 이번 주 내로 상의드리겠습니다.




이러한 황당한 일은 내려가서 하소연을 보태서 직접 전해야 맞는데, 그리고 이후의 일정을 바로 협의해야 맞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웬일인지 교감님의 답장이 바로 온다. 수신자가 여럿인 메시지의 경우 보통은 답장을 하지 않는데 황당하셨나 보다.





"선생님의 노고가 염려됩니다. 부디 건강 잘 챙기셔요."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감 선생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그 어떤 메시지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자꾸 한숨이 나왔다.





강사를 두 명 채용해야 했다. 그런데 관련 예산은 늘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보기엔 비슷한 일인데, 두 강사님을 위한 예산은 각각 다른 부서에서 맡고 있나 보다. 나 같은 평교사가 바다(?)의 세계를 어찌 알까! 때문에 이 두 강사님은 각기 다른 일정으로 채용하게 된다. '예산이 확정되었으니 뽑아도 좋다.'는 공문이 날아오면 그에 따라 형식과 절차에 맞춰서 업무를 추진할 뿐이다. 한 분은 2월 초에, 다른 한 분은 2월 말에 채용을 끝냈다.






2월 초, 채용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참 정신이 없긴 했다. 겨울방학 개학 후, 그 소중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많이 속상했다. 더군다나 학년말에는 말 그대로 "시즌"인지라 담임 업무만으로도 벅찬 시기였다. 그래도 나의 업무였고, 더군다나 학생들과 직접 마주하게 되는 강사님 채용 문제라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때 채용된 강사님은 원래 일정대로 출근에 문제가 없었다.







2월 중순, 다른 강사님을 위한 예산이 우리학교에 편성되었으니 어서어서 채용 업무를 추진하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첫 번째 강사 채용 확정 후, 채용 보고 기안문의 잉크가 막 마르려던 참이었다. 참, 숨 돌리는 틈도 안 주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도 보았다. 그래도 '3월 전에 채용 업무를 끝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애써 좋은 점을 찾으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교육청에서 보내준 예시 자료를 참고하여 우리학교 실정(학사 일정, 수업 시수)에 맞게 공고문을 작성했다. 윗분들과 행정실 주무관님과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쳤다. 특히나 계약 기간, 강사료, 그 외 기타 강사 신분과 관련된 중요 사항을 제대로 작성했는지 꼼꼼히 살펴야 했다. 행정실 주무관님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했다.






공고 기안문 및 채용 계획서 작성 → 협의 후 수정→ 공고 + 채용 계획 기안문 상신 → 학교장 결재 → 공고문, 누리집 세 군데 업로드 → 서류 접수 → 서류 평가 (평가자 3인) → 서류 심사 결과 기안문 상신 → 서류 합격자 통보 및 면접 일정 안내 → 서류 합격자 면접 (평가자 3인) → 면접 심사 결과 + 최종 합격자 보고 기안문 상신 → 학교장 결재 → 최종 합격자 통보 → 계약서 작성 + 최종 합격자 서류 수합 → 계약서 + 합격자 서류 기안문 상신 → 학교장 결재



과정을 거쳤다. 학운위 일정에 맞춰 심의도 받는다.



-써 놓고 보니 살짝 열이 오릅니다. 저는 업무를 추진할 뿐입니다. 심사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또 해야 한다고? 학부모 설명회를 막 끝냈고, 이제 본격적으로 상담 시즌이 시작되는데, 내가 이걸 또 해야 한다고? 어휴 진짜!




이틀은 교무실에 내려가지 않았다. 아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머리를 써서 계약서까지 미리 쓰고, 우리학교 학생들 잘 부탁드린다고 몇 번이고 마음을 전했던 나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부장님, 오늘 6교시 끝나고 내려가겠습니다. ** 강사 채용 일정 논의 드리겠습니다. "



미루고 미루다가 상담이 비어있는 잠깐의 시간 짬을 냈다. 더 미루다간, 예산을 반납해야 할 상황까지 오게 될 테니.




교무실에서 만난 부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분위기를 잡아 주셨다.




"어떡하면 좋아! 너무 고생해서!! 어!!!

"인생을 배웁니다!"

"어??? 뭐라고???"

"내 맘대로 안 되는 인생, 인생을 배운다고요!"



나의 대답이 무척 엉뚱하다 생각하셨나 보다. 교무실에 있던 모든 분들이 쓴웃음을 지으셨다.



"어떡하겠어요. 이게 제 팔자인 걸요!"



부정도 부인도 원망도 분노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다시 정신 차리고 수많은 화살표를 따라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인생, 너!!! 진짜!!! 짜아~~식!!!"









현재는 강사 채용이 완료되었고, 계약서 쓸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학교 학생들의 인연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럴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잠깐 머물다 떠나는 강사님들, 급식실에서 도움 주시는 여사님들, 이주에 한 번씩 교실을 청소해 주시는 어르신들, 그분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지를요.





날마다 인생을 배워 갑니다.






P.S. 이 업무를 2년째 맡고 있지만 채용 업무를 왜 교사가 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선 실제로 오만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이게 학교가 할 일인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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