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작가의 탄생

지은이에게

by 글꽃향기





동아리활동! 가장 설레는 시간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엔 특별활동으로 불리던 시간이다. 유일하게 ‘마이 웨이’를 고수할 수 있는 시간! 물론 저 멀리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어느 과목이든 어느 시간이든 '재구성할 수 있단다!', '너의 역량을 맘껏 발휘해 보렴!'이라 돗자리를 깔아주곤 하지만 현실적으론 참 어렵기만 했다.






독서나 글쓰기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 왔지만 복직 후 맞이한 2024년의 동아리 시간은 내겐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다. 휴직 기간 동안 글쓰기의 진정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동아리 활동으로 편성된 시간은 16차시에 불과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우리반 동아리부는 <꼬마 작가부>가 되었다.








3월 둘째 주였을까? 동아리 활동 연간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고작 며칠 동안 학생들과 마주했을 뿐, 개개인의 글쓰기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맞춤법 수준 정도, 문장 구성 능력 정도를 알아챌 수 있었을 뿐이다. 글쓰기 능력에 상관없이 적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일단 계획서를 완성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든 수정할 수 있었으니까.







1차시, 2차시의 활동 내용은 '문장을 이어가며 이야기 만들기'였다.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활동이다. 첫 문장을 제시했고, 학생들은 한 문장씩 이어 나갔다. 각자의 문장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TV 화면을 통해 확인했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났다.




갑자기 사라와 딕시와 돼지가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왜 사라인지, 왜 딕시인지 질문하지 않았다. 아마 당시 읽고 있었던 책의 주인공이었거나, 게임의 등장인물이거나, 그도 아니면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겠지. 어설프게 질문을 했다간 무의식 중에 필터가 생기고 말문이 막혀 버리는 참담한 결과가 이어질 수 있다. 궁금해도 무조건 참아야 했다.





2차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3월의 숨 막히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맞이한 4월의 첫 동아리 시간, 내가 읊은 첫 문장은 막 시작된 4월이 아주 조금은 여유로우면서도 보람차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으리라.






역시나 마동석이 왜 나타났는지 SCP1006의 정체는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문장을 키보드를 통해 기록으로 남겼을 뿐이다.



1차시와 2차시의 수업에서 놀라웠던 점은 이 모든 문장을 꼬마 작가 공책에 쓰고 있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질문에는 말로만 답을 할 뿐 쓰기를 매우 귀찮아하는 학생들도 이 문장들을 공책에 기록으로 남겼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쓰게 만든 것일까? 하지만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팔 안 아파? 멋진데!"라는 말로 그 순간을 잘 넘겼다. 질문은 -이 시간만큼은-금지였다.




3차시에는 벌새 사진을 TV 화면에 띄워 주었다. 벌새를 보고 다섯 문장을 맘껏 만들어 보라고! 벌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다섯 문장으로 이야기를 끝낸 학생들도 있었고, 공책 한쪽 이상을 쓴 학생들도 있었다. 초당 60회의 날갯짓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도 있었고, 뜻하지 않은 모험을 시작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야기가 짧게 끝났든 길게 이어져서 마무리를 맺지 못했든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학생들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4차시에는 화면으로 만난 민들레의 홀씨가, 5차시에는 미술 시간에 만든 찰흙 동물이 이야기에 출연했다. 6차시와 7차시에는 사물함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8차시에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활용해서 봄을 표현한 작품이 주인공이 되었다. 작가님들의 이야기는 교실에서 이뤄졌던 활동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고, 공책은 빠르게 채워졌다. 일부 학생들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했으니 이번 시간에 이어서 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기도 했다.




목요일 6교시에 이루어진 동아리 활동, 그 어느 때보다도 피곤함이 가득했을 시간임에도 학생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고 분위기는 활기찼다. 발표를 꺼리는 학생들조차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에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5월 말에 끝나버린 1학기 동아리 활동, 또 언제 할 거냐고 원망스러움이 가득 담긴 질문이 이어졌다. 국어 시간을 활용해서 습작 시간을 이어갈 마음은 가득했지만 현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2학기에 다시 시작된 동아리의 첫 시간, 교사의 개입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화면에 띄워진 저 문장과는 상관없어도 되냐고 하면서 말이다. 친한 친구들이 악당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사라져 버렸고, 가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모험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도 있었다. 학생들은 중간중간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의 상황을 설명하며 적절한 단어를 알려 달라고 했다. 맞춤법을 묻기도 했다.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야기의 구성에 대해, 결말에 대해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단, 이곳은 학교이고 이 시간은 교육 활동 시간이니 욕이나 폭력은 금지라고 강조했을 뿐이었다. 스스로 이야기의 시작을 선택했고, 다양한 등장인물을 출연시켰다. 이야기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했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다섯 문장을 쓰고 끝냈든, 2~3차시에 걸쳐 이야기를 이어 나갔든 서로 비교하지 않았다. 각자가 선택했고, 선택에 따라 공책을 채웠을 뿐이다. 친구의 이야기에 내가 등장했다며 어깨가 으쓱으쓱 해졌고, 다음 시간에는 보답이라도 하듯 친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14차시, 15차시에는 맘에 드는 글 두 편 정도를 골라 '고쳐쓰기'를 하려고 했고, 16차시에는 고쳐쓰기 한 글을 실어 작은 책자를 만들고 싶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학생들은 글을 쓰는 시간을 더 갖길 원했다. 꼬마 작가부에서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교육과정의 재구성'의 논리에 어긋남이 없었기에 계획을 수정했고, 작가님들이 원하는 대로 창작의 시간을 늘렸다. 작은 책자 만들기는 조금 여유가 있을 거라 예상되는 2월의 국어 시간으로 미뤄졌다.




공식적으로 동아리 활동이 마무리되는 16차시에는 '꼬마 작가 북토크'시간을 가졌다.








자신이 쓴 글 중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글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님들은 오직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창작해 낸 글을 자신 있게 발표했다. 원하는 작가님들만 자리에 모셨는데, 평소 발표를 부끄러워하는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이 마무리되고 걷은 꼬마 작가 공책, 당시 우리반의 재적 인원은 21명이었지만 당일 공책을 놓고 온 친구, 마무리가 안 됐다며 다음 날 제출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동아리 활동 종료 후, 예상치 못한 질문이 수시로 이어졌다. 볼멘소리였다.

"언제 꼬마 작가 할 거예요?"

"꼬마 작가 안 해요?"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교과서 진도는 물론이거니와 수영 교육이며 예술 교육이며 빡빡한 일정에 숨이 찼다. 겨울 방학 전에 어떻게 해서든 진도를 마치고 개학식 후 2월에 시간을 가져보자 작가님들께 이해를 구했다.




겨울방학 후 모두가 애타게 기다렸던 시간, 국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2시간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희망자에 한해서 글을 두 편 정도 고르고, 그 글을 모두 책자에 실을 생각이었다. 계획은 아주 단순했고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6차시의 수업 후 꼬마 작가의 습작 공책에 남겨진 결과물은 차이가 꽤 컸다. 나는 이 차이를 '수준 차이'라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제시한 자료에 따라 이야기를 만든 학생들이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든 학생들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물은 그 과정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성의 없어 보이는 짧은 이야기와 노력과 열정이 심어진 제법 잘 구성된 이야기 두 가지로 구분될 뿐이었다. 결과물만 만나게 되는 학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혹시라도 이 책자를 조금 자라서 보게 될 작가님들의 마음은 괜찮을까? 생각지 못한 고민이 이어졌다. 이 즐거웠던 시간이 고작 작품 간의 비교로 끝나 버린다면?





계획을 수정했다. 각자의 책자에 각자의 글만 싣는 것으로 말이다. 대신 책의 장수는 무한대로 제공해 줄 수 있으니 책자에 남길 글은 맘껏 고르라고 했다. 대신 최소 두 편은 실어야 한다고.









글을 새로 써도 되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었다. 장수를 잘 계산해서 책자를 먼저 만들고, 글은 천천히 채워 나가도 된다고 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두 시간은 당연히 모자랐다. 매우 아쉬워했다.




이 책자를 앨범이나 책꽂이에 깊숙이 넣어 놓고 있다가 일 년 후에, 혹은 어른이 되어서 다시 펼쳐 봤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전했다. 2024년의 꼬마 작가부 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중 몇 명은 습작 시간을 이어 나가며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기를 바라면서,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로 삼기를 바라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 당할 앞으로의 삶 속에서 각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멋진 시 한 편을 책자에 실었다. 호스피스와 용접공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덕분에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낭독의 시간도 빠뜨리지 않았다.








2024학년도 하면 단연코 '꼬마 작가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의 꼬마 작가님들에게도 2024년이 그러하기를! 누군가에게는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긴 시간'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나를 잘 드러낼 수 있었던 시간'으로 또 담임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기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여학생이 전해준 쪽지.

<선생님>이란 책을 써 보겠다는 다짐의 메시지가 감동적이었다. 종업식 날 이면지를 달라고 하더니 고사리 손으로 또박또박 마음을 담아냈다.




무언가를 써 보겠다고 결심한 이 순간이 현실로 이어지기를


스스로 써낸 글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앞으로 맞이할 그 어떤 어려움도 글에서처럼 당당하게 맞서 나가기를




2025학년도 나는 고학년 담임이 되었다. 2월은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여러 계획서를 채워 나가야 한다. 동아리 활동으로 10시간이 배정되었다. 고학년 동아리 시간은 반이 섞인단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동아리 부서에 <작가부>를 써넣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고학년에게, 10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을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