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나 늦은 작별 인사
안녕, 2주 전 헤어진 나의 삼이향!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너희들과의 마지막 날을 떠올려 본다.
1교시 종업식, 일 년 동안 우리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방송으로 돌아보았고, 학년별 대표 학생이 독서 기록상을 받았지. 현 학년을 어떤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다음 학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간단한 설명을 들었고 말이야. 교가를 불렀고, 종업식은 15분 이내로 끝이 났던가?
삼삼오오 몰려와서 "몇 반이에요?" 라며 묻는 너희들, 너희들의 눈이 그렇게 빛나는 건 처음 보았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그 모습을 보여 주다니! 서운하구나! :D 귀까지 쫑긋 세우는 너희들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있는 대로 끌어 댔었지. 담임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영향력이라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너희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기 싫었던 걸까? 희비가 엇갈리는 너희들의 반응,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
'얘들아, 지금은 이래 슬퍼도 또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진단다.'
3개 반뿐이기에 거의 대부분 같은 반을 해 보았다고 했었나? 참 안타깝다. 지금 시기야말로 어떤 특별한 기준 없이 다양하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기인데. 그래도 나머지 65명과 모두 친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야 무엇이 아쉬울까? 다 네 편으로 만들렴. 서울에도 한 학년에 한 학급뿐인 학교가 꽤나 많으니까 말이야.
최대의 궁금증이 풀렸으니 그다음으로 중요한 통지표 배부 시간, 혹시나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싶으면 바로 나오라고 했었지? 선생님은 시험지를 앞에 모두 쌓아놓고 대기 중이었고. 1학기에는 우르르 몰려나왔었는데, 어라? 2학기에는 아무도 없네! 아마도 한 번 경험이 있어서 시험을 봤을 때 미리 다 염두에 두고 있었나 봐. 많이 컸다 너희들! 근데 왜 중등스러운 분위기가 초등까지 들어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그러고 나서 개봉한 우리들의 '타임캡슐'
2024년 3월 4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2025년 2월 14일의 나에게 편지를 썼었지. 너희들은 수시로 타임캡슐이 잘 있는지 나에게 물어봤었고.
"편지 내용 기억하니?"
"전혀 안 나요."
"선생님도 기억 안 나는데 너도 안 나는구나!"
'나만 기억 안 나는 거 아니야, 안심하자. 휴우~'
당시 너희들은 내가 편지를 볼까 봐 엄청 걱정을 했었는데, 사실 몰래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행하게도 그 편지를 열어 볼 시간은 결코 오지 않았단다. 너희들이 수시로 '타임캡슐 잘 있나요?' 물어보지 않았다면 너희들을 보내고 짐을 빼낼 때 발견했을지도 몰라. 정말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거든.
"눈물은 안 나네요."
이 편지를 다시 열어 볼 때 눈물을 흘리는 선배들도 있었다고 진지함을 유도했었지. 실제로도 눈물을 흘리는 선배들이 꽤 많았단다. 너희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유는 선생님의 잘못이 큰 것 같아. 너희들이 마냥 어리다고 생각하고 표를 만들어 편지 형식을 정해 버렸으니까. 너희들의 글솜씨를 진작 알았더라면 그냥 무지 편지지로 출력을 해 놓았을 텐데. 미안하다! 그래도 추억이니 잘 간직하렴.
스승의 날 -개인적으로는 이날을 거부하고 있단다-이며 방학식 전날이며 너희들은 가끔 나에게 편지를 건넸지만 우리가 헤어질 때 달라고 너희들을 돌려보냈었지. 선생님은 그 무엇도 받지 않을 거라 미리 단단히 일러두었기에 '정말로?' 라 생각했던 친구들은 한두 명에 불과했지만, 그때 참 미안했어. 누군가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면 혹시나 '차별한다'라는 편견이 생길까 봐 두려웠단다. '내년 스승의 날, 그 편지 꼭 줘!'라는 말을 잊지 않았으면 해. 나에게 너희들의 꼬물꼬물 편지보다 큰 선물은 없으니까 말이야.
정성스럽게도 붙여 놓은 스티커, 스티커를 고르고 또 고르느라, 스티커를 붙일 적당한 자리를 찾고 찾느라 신중했을 모습이 떠올라서 한참을 미소 짓고 있었단다.
이 정성 어쩌니... 편지 봉투 안에는 형광펜 두 자루가 들어 있었네. 아까워서 저걸 어떻게 쓰니?
나를... 그렸구나;;;; 꼬깃꼬깃 이면지에 쓰여 있는 편지도 정말 사랑한단다. 보고 싶으면 연락 달라니. 그러다 맨날 전화하면 어쩌려고!!!
이 사람 누구야? 나 맞니? 너무 예쁘게 그려줘서.... 다른 선생님 생각한 거 아닌지 묻고 싶구나! 실물화상기에 비친 나의 손을 그린 거 보니 나 맞는 것 같아. 고맙구나. 나를 이 모습으로 기억해 주길!
점심 식사 후 하교하면서 "아, 선생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정말 이상해요."라고 말하던 너희들! 그 예쁜 마음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랄게.
겨울방학이 끝날 때 즈음엔 남은 열하루가 너무 아쉬워서 너희들 앞에서 눈물이라도 흐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지막 날까지 우당탕탕 정신이 없어서 눈물까지는 보이지 않을 수 있었어. 정말 다행이야. 이제 우리가 마주치면 정말 순수하게 반가운 마음만 가득하겠지.
너희들이 급식을 먹고 하교한 순간부터 선생님은 이렇게 또 이사 준비를 했단다. 반 정도 싼 짐이 이 정도란다.
이 교실을 사용할 선생님을 위해서 컴퓨터도 정리를 했단다. 그리고 일 년 내내 나의 컴퓨터 바탕 화면이었던 너희들의 흔적도.... 걱정 마. 알다시피 내 휴대폰 사진첩엔 너희들 지분이 항상 남아 있을 테니. 너희들이 허락한 수업 시간 영상도, 음악 시간 노랫소리도 잘 간직하고 있을게.
선생님 역시 교실과 이별했단다. 우리들의 추억이 소복이 쌓인 이 교실은 후배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겠지.
너희들의 봄방학 동안 선생님은 새로운 교실에 가서 짐도 잘 풀었고, 또 너희들의 소중한 자료도 모두 잘 정리했단다. 너희들의 정보가 담긴 여러 통신문이며 성적 자료며 파쇄를 하면서 생각했지
'이제 정말 안녕이구나!'
너희들의 학년을 마무리하고, 새 학년을 준비하느라 작별 인사가 너무 늦었어. 아니 어쩌면 인사를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봄방학 동안 연수를 들었는데, 알파 세대인 너희들은 120세까지 살 거라고 하더라. 그런 너희들에게 더 알려 줬어야 하는 건 뭐였을까? 20세기에 태어난 내가 21세기에 태어난,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스마트 기기를 만났던 너희들에게... 선생님은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새로운 선생님이 누구인지도 궁금할 테고, 새 교실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겠지. 3일 후엔 오며 가며 만날 수 있겠네. 그땐 정말 활짝 웃어줄게! 나의 단호한 표정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야.
너희들의 4학년이 찬란하길!
응원하고 또 응원할게!
이젠 정말 안녕, 나의 삼이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