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의 어느 날, 출근길 나의 이야기
3월은 봄인 듯 느껴져도 봄이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진다. 낮 기온을 생각하며 얇은 옷을 걸쳤다간 후회하기 십상이다. 몇십 년 동안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몇 해 전부터 봄을 쉽게 보지 않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이가 샤랼라 제법 가벼운 봄옷을 걸치더라도 나는 좀처럼 두꺼운 코트를 놓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나 역시 무거운 코트를 내려놓고 싶었다. 요즘 복잡한 내 심정을 가볍게 하고 싶은 마음이 보태진 걸까? 평소처럼 짧은 회색 코트를 몸에 걸쳤다가 유난히 더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얇은 재킷을 꺼내 들었다. 재킷 안에는 제법 두툼한 상의를 걸쳤으니 생각보다 기온이 낮더라도 감기까지는 걸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검은색에 가깝고, 안쪽으로는 체크무늬가 새겨져 있는 재킷이다. 2년 전쯤이었을까?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 주신 옷이다. 내가 갖고 있는 꽤 괜찮은 옷들은 대부분 엄마표이다. 나는 옷을 사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 돈이 매우 아깝다는 주의다. 하지만 다 좋을 수는 없는 일, 태가 나는 건 포기해야 한다. 편안한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대충 엉덩이를 가려주는 길이의 재킷 정도면 만족한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꽤 괜찮은 옷을 입고 등장할 때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다.
'옷이 다 거기서 거기지!'
엄마는 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하나를 사더라도 좀 있어 보이는 옷을 사라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항상 나에게 옷을 핑계로 '구박'을 주신다.
엄마는 나에게 옷을 깨끗이 입는 편이라 하셨다. 엄마표 옷인데도 가끔 내 옷을 못 알아보실 때가 있다.
"그 옷 뭐냐? 어디서 샀냐?"
"엄마가 5년 전에 생일 선물로 사 주셨잖아요!"
"그게 아직 이렇게 멀쩡하다고?"
대충 엄마와 나 사이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출근하는 날이면 겉옷까지 갖추어 입는 편이지만 일터에 도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로 운동복 비스름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거의 학생의 교복 수준으로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펜이나 접착제 등의 이물질이 내 옷에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한 번은 유성 매직이 베이지색 가죽점퍼에 진하게 묻어 있어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다. 세탁소에서도 어쩌지 못해 한동안 검은색 줄무늬를 개성 있게 하나 덧칠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20년 된 코트도 아주 잘 입고 있다. 옷 안쪽의 상표 글씨가 바래다 못해 지워져 버려서 치수나 옷 세탁 방법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것 빼고는 반듯한 모양을 제법 잘 유지하고 있다. 다만 요즘 유행에 맞지 않는 제법 연식이 있는 클래식 코트가 되어 버려서 잘못하다간 아주 옛날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긴 하다.
요 며칠 미세먼지와 황사로 칙칙함을 자아냈던 분위기와는 달리 -그리 완벽하게 맑은 편은 아니었지만- 코와 입으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 제법 가벼워진 옷차림에 어울리는 날씨이다. 내 마음도 조금은 가뿐해지기를 기대해 보는 출근길이다.
창문을 열고 일터로 향하는 출근길, 교통 지도를 표시해 주던 차의 화면이 갑자기 새카맣게 변한다. 전화 수화기 모양의 아이콘과 '작언니'라는 세 글자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안 그래도 나와는 달리 옷을 험하게 입어서 엄마에게 한 소리 듣는 작은 언니를 잠깐 떠올렸는데 전화까지 와 주니 참으로 반갑다. 어쩐 일이지? 초록색 수화기 아이콘을 눌러본다.
"어떻게 지내?"
안부에서 시작된 대화는 내가 올해 몇 학년 담임이 되었는지, 학교생활은 괜찮은지, 엄마의 컨디션은 어떤지 질문에 질문으로 줄줄이 이어진다. 가까이 사는데도 얼굴 보기가 쉽지는 않다. 안부를 묻고 궁금증을 어느 정도 가셔 낸 언니는 사는 거 별거 없다고,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고 스트레스 풀어가면서 행복한 일 꼭 하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라고 잔소리 비슷하지만 따뜻한 조언을 막둥이에게 건넨다.
"응 언니, 나 글쓰기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럼 됐다. 들어가."
잔소리와 충고뿐인 작은 언니지만 최고 위기의 순간엔 슈퍼맨처럼 나타나 힘든 일을 해결해 주었기에 난 언니를 미워할 수 없다. 작은 언니는 늘 내게 그런 존재이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가벼운 옷을 꺼내 들었던 출근길이었다. 보통의 봄날과는 달리 3월 중순 기온에 맞는 옷을 입고 출근한 오늘, 내가 갖고 있는 꽤 괜찮은 옷들을 선물해 주신 엄마에서부터, 옷을 대하는 나의 자세 확인을 거쳐, 나와는 달리 옷을 험하게 입는 작은 언니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다.
나의 생각의 흐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대개는 기록까지는 이어지지 못한 채로 내 앞에 펼쳐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들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일터에 도착한 오늘이어서 그리고 금요일이라 제법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오늘이어서 메모장을 열어 아침에 떠오른 생각들을 끄적여 놓았다. 덕분에 오늘 나의 아침 이야기를 –비록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기록으로 남겨본다.
지금 보니 오타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 같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