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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춤 Jun 18. 2021

입문, 주식

행복의 정복 #1

주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내 나이는 11살이었다. 당시 가장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바둑기사이셨는데, 그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아저씨가 기척도 못 느끼고 586 컴퓨터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엔 바둑 공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친구한테 듣고 보니 부업으로 주식 투자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집에 놀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한심하다며 혼내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아니면 이미 한바탕 했다며 아저씨는 밖에 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나에게 주식은 바로 그 장면이었던 것 같다. 어둡고, 늪에 빠진 듯한. 불행의 상징.


이후 대학에 들어가 경영학 전공을 선택한 나는 전공필수 과목으로 증권시장론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 과제로 받은 모의투자에서 적당히 좋아 보이는 한 종목에 올인하고 기다린 결과 수익률 1등을 거머쥔 적도 있었다. 그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주식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주식을 하는 대학생들은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주위 사람들이 모두 주식을 할 때에도 나는 부정적이었다. 적금 한번 들지 않을 정도로 재테크에 관심이 없던 터라 은행에 다니는 친구 놈에게 매번 구박을 받을 정도였으니 주식투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는 삶의 태도 혹은 행복의 함수에서 소유와 욕심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어차피 인생을 바꿀만한 돈을 벌지 못할 바에야 아예 에너지를 아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돈보다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지에 대해서만 고심했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이대로 흘러가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안면마비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이 병은 과로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바이러스가 안면신경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켜 손상시키는 것이다. 내가 그런 병에 걸릴 만한 사람이라고 대부분 생각했는지 회사에서도 최대한 배려를 해주려 했고, 나는 몇 달 동안의 휴가를 갖게 되었다.


병에 관해서는 따로 얘기하도록 하고, 아무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들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앞으로 다시 주어지지 않을 이 안식월 동안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바꿀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냐 평소에 미루었던 것 다해보고 앞으로 다른 삶 찾자!라는 얘기.


코로나가 갈수록 심해졌고 매일 통원치료를 해야 했기에 물리적인 제약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선 숨 가쁘게 달려오던 몇 년 동안 쓰지 못했던 노트를 만들었다. 일정이라고는 회사일 뿐이었고 메모의 빈도도 현저히 줄어 노트를 채우지 못했는데, 불렛 저널이라는 외장하드를 세팅해 신경이 쓰이는 것들은 다 이전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났더니 한결 개운했다. 연필을 수집했고 책도 읽었다. 그리고 Becoming Aleph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픽셀아트 공부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뭐든 시작하기 전에 나에 대한 내용을 글로 정리를 해두어야 할 것 같아 브런치에 글도 올려보았다. 해보니 참 간단한 일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회사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거나,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거나 혹은 고향에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부분이었는데 어느 선택지든 액션을 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양가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내려가는 것을 1순위로 생각했는데 괜찮은 직장이 아예 없는 수준이다 보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분명히 7년 동안 퇴사 생각을 해왔는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회사의 근무환경이나 복지, 연봉, 사람들의 수준 등을 고려하면 어디를 선택하더라도 몇 계단은 다운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려면 그 이상의 정신적 자유라도 있어야 했지만 홀몸이 아니니 저지르기가 어려웠다. 결국 병가기간 3개월이 지날 때까지 나는 진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기꺼이 회사에 돌아가는 것으로 결심했다. 


병가 기간 동안 삶을 대단히 바꾸진 못했지만, 쉬면서 이것저것 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애쓰거나 깊이 고민하지 말고 안 해본 게 있으면 그냥 하는 근육이 생긴 것이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이전만큼 퇴사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삶이 충분하게 느껴졌다. 애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주식에 입문한 것은.


 <월든>을 읽으며 진정한 무소유의 실천을 고민하고 앞으로는 살면서 쓸데없이 뉴스를 보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던 1월 초, 주식 수익을 자랑하는 후배와 얘기하다 '그냥' 주식계좌를 만들게 되었다. '어, 살면서 안 해본 것 중 하나인데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나는 코스피가 역사적 고점에 도달한 날, 첫 주식으로 삼성전자와 셀트리온을 샀다. 에헴, 분명 이땐 야수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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