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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희Yi Chul Hee Aug 27. 2023

고호를 만든 여자  

- 고호에 운명을 건 한 여인의  인생드라마   

  

수많은 매체 영화 음악 드라마에서 고호는 수시로 등장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열정으로 그림을 그린 예술가

죽어서도 부활하는 예술가의 상징으로  고호는 우리 머리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를 잊고 있습니다.     

고호는 왜 그렇게 유명해진 것일까요?

 유명해진 진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https://youtu.be/OhzONNJ6B7g?si=J9fM8UYnmoswZc81 

고갱과 싸우다 홧김에 귀를 잘라버렸다는 고호이야기는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귀를 자른 그날 동생태오가 결혼한다는 편지가 도착 한 바로 그날입니다 

그래서 고호는 그 편지를 보고 이제 동생의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사고를 친 

원인이라는 분석입니다 


어쨌든 저는 고호의 삶이나 작품이 제게는 전혀 별로였으며

 그를 닮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아니 절대로 고호처럼은 되지 말 자였습니다  

심지어  저의 첫 개인전노트에 

나는 고호보다 피카소가 좋다고 일부러 쓰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고호는 작품을 떠나 독립된 한인 간으로 자립심 은 빵점입니다  

부모에게 업혀 산다는 캥거루족은 들어보았어도 동생에 업혀 사는 캥거루족은 없습니다 

그 삶은 한마디로 숙주가 있어야 하는  기생이었습니다  

 

고호의 그림은 마네나 모네처럼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림도 아니며

  드가처럼 데생력이 뛰어난 멋진 그림도 아닙니다  

그러면 색감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 색감마저 소위 쌩색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까지 전 세계에서 고호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4     

https://www.nytimes.com/2021/04/14/magazine/jo-van-gogh-bonger.html 

 2021년 4월 14일 자 뉴욕타임스 

The Woman Who Made van Gogh라는  

장문의 기사는  고호를 만든 여인이 따로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고호 동생 테오의 부인이며 

 고호가 제수씨라고 불러야 하는 요한나 반 고흐 봉허 (Johanna Gezina van Gogh-Bonger1862~1925)

를 주목해야 합니다                          


요한나가 고호를 본 첫  느낌은 좋았습니다 

1890년 봄고호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해주려고 

지금 이 그림을 들고 테오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요한나가 들은 대로라면 고호는 피폐하고 못난 

정신병자여야 했는데 그냥 멀쩡한 남자였다고 말합니다 

하긴 신생아가 태어난 동생집에 찾아오면서   

말끔하게 목욕도 하고 선물까지 들고 와서 정중하게 대해서 

진짜 고호의 정체를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고호는  37세 나이로 권총으로 자살하고

 6개월 후 동생 테오도 사망합니다  

결혼한 지 21개월 만에 요한나는 애가 딸린 과부가 되었습니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습니다 

 남은 것은 남편과 고호가 주고받던  편지뭉치와 

침대밑 옷장 다락방 여기저기에 쳐 박혀있는

  고호의 그림이 전부였습니다                                           

슬픔이 가득한 요한나는 긴 밤을 지새우며

고호의 편지를 보게 됩니다 


그때만 해도 그 편지가 그녀를  

어떤 운명으로 끌고 갈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 편지는 인간고호에  들어가는 인트로였으며 

  고호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가이드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던 요한나에게 

편지는 예술을 가르쳐주며 온갖그림까지 그려진 

그 편지 그 자체가 예술 덩어리였습니다 


그 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받던 

고호의 깊은 절망감을 이해하게 만들고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왜 고호가 그렇게 몸부림치며 그림을

 그려야만 했는지도 알게 했습니다       

마침내 요한나는 슬픈 고호의 영혼이  가련해서

 눈물까지 흐르게 됩니다   

                    

 이때 요한나의 일기입니다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외로운 빈센트의 모습이 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나서 편지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

 

이것을   한스 루이텐 Hans Luijten이라는 고호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박사는  이때 요안나가 고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라고 비유합니다  누구나 고호의 편지를 읽기만 하면  

고호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강한 비유입니다      

1891년 11월에 쓴 요한나의 일기입니다 

 남편은 내게 아이 말고도 

또 하나의 유산을 물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가치를 높여야 한다

테오와 빈센트가 평생 동안 만든 이 보물들을

 아기를 위해서라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이때 요한나는  고호의 작품을  띄우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사실 그 일은 죽은 남편과 고호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아이운명이 걸려있으며   그것이 또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요한나가 쓴 일기입니다 

 나는 너무나 힘들고  슬프다 

운명은 나를 더 거친 세계로 몰고 가지만  

거울에 비친  나는 너무나 매력이 없고 못나 보인다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자신도  없다 

아~~ 하느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요한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습니다 

이렇다 할 백 있는 것도 아니고 미술을 배운 적이 없으며 

사업을 해본 적 도 없습니다 

잠시 영어선생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요한나 우선당장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해서 

  하숙집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숙집 온벽에는 고흐의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문화계 사람들을 하나씩 초대해서 

고호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뉴욕타임스에서는 요한나가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거미줄에  첫 번째 타깃은 당시 미술평론가로 

제일 잘 나가는 얀 베스(Jan Veth1864∼1925)였습니다      

 고호작품을 본 얀 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좋게 보아 줘도 아마추어 화가의 

유치한 욕망을 그린 것입니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며칠 후  다시 얀 베스를 찾은  요한나는 여자로서 차마 들어서는 안될 심한 막말까지 

 듣게 됩니다.  


당신 같은 여자가 멀 안다고 이런 그림을

 내게 밀어붙이는 겁니까? 

이런 일은 남자를 원하는 여자들이 하는 겁니다.  맛나요?

    

그 말로 모든 것이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얀 베스에게 한 통의 편지와  

커다란 봉투가  배달됩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고호가 남긴 편지를 평론가의 눈으로 보지 마시고 마음으로

 보아주세요  제가 느낀 그 편지의 영혼을  

당신도 분명히 느끼실 것입니다 

 

요한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이 시기에  딱 타이밍에 고호를 엄청나게 좋게 평가하는 의  신문기사가  발표됩니다   그것도 당시 꽤나 유명한 요한 하우징가 [ Johan Huizinga]가 쓴 것입니다 

 

 "고호의 그림과 편지는  미술과 문학이 하나로 융화되는 

새로운 예술사조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고호를 칭찬합니다  

      

그런데 이기사 때문인지 고호의 편지를 보아서 인지 몰라도

얀 베스가 완전히 돌아서서  고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고호작품은  너무나 소박한 진실과 영혼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고호를 알면 고호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못된 얀 베스가 이렇게 변한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나가 미리 하위징가를 만나 작전을 짠 것입니다  

 

이렇게 고호를 저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한 사례는 많습니다 

  고호의 첫 번째 회고전

 이 해바라기 포스터를  그린사람이 

 리처드 롤랜드 홀스트라는 바로 이 화가입니다  

 이 사람도 이전에  요한나에게 

눈물로 고호만 팔고 다니는  불쌍한 여자라고 까지 했던

 사람이 변해서 이 포스터를 그린 것입니다                                          

이제  요한나가 미술관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오라는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한 손에는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또 한 손으로 

무거운 그림을 맨 채 유럽 곳곳의 미술관

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대형 사고를 칩니다 

1892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뷔파 화랑과 

올덴젤 화랑에서  동시에 고호의 회고전을 

열게 됩니다.              이때 고호라는 무명의 화가가 세상에 정식으로 등장하며 

 이후 유명작가들과 함께 전시하게 됩니다  

 그래도 요한나는 그냥 감사하다고 만 하지 않았습니다 

모네 나 드가  로테렉같은 대가들 작품 바로 옆에 

고호 그림을  걸어야만 얌전이  돌아갔습니다      

1905 요한나는  두 번째 초특급 홈런을 치게 됩니다            

    

암스테르담의  최고의 미술관 

슈테델리크 뮤지엄 Stedelijk Museum in Amsterdam에서 

초대전을 받은 것입니다 

이 전시에서는  후기 인상파의 대표주자 고호, 

그리고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말도 듣게 됩니다       

이것이 고흐가 죽은 지 15년 만에 일이고 

그리고 이전 시에서 엄숙하고 세련되게 오프닝 맨트를 하는

 사람은 바로 요한나였습니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은 이때도 있습니다 

어떤 비평가가 고호 정신병력에 대해 태클을 걸었습니다 

 이전 시는 잘못된 전시이고 일종의 스캔들이다 

고호작품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중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그림 속의 별들이 마치 먹는 도넛이 떠 다니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런 악평은 사람들에게  더 호기심을 유발하여 

고호를 유명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들의 비난 덕분에 결국 1941년에 별이 빛나는 밤 

 이 그림은  뉴욕 현대술관 모마에 들어가서

 모마의 대표작품 센터피스가  되었습니다  

1914년 요한나는 고호와 테오의 편지를 영문으로도 출간시킵니다요약본으로 간단하게 하자는 출판사와 싸우면서  고호의 풀 스토리를

자신이 직접 번역한 단행본으로 기어이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고호의 드라마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책 때문인 것입니다        

같은 해 요한나는 테오의 무덤을 고호무덤 옆으로 

나란히 이전시켜 이 아름다운 형제의 드라마를

 기어코 완성시켜 버립니다 제가 헤아려보니 

그들이 죽은 지 정확히  23년 만에 일입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요안나는 보통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남편의 유해를 파헤치는 것 정도는 

주저할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형제의 무덤은 

고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순례코스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요한나는 더 커지고 더 야무지고 더 세졌습니다

한번 작품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상대가 아무리  애원해도 단호하게 잘랐습니다.   

 

세계 정상급의 화상들을  뒤에서 조절하면서 그들을 앞세워  거만한 미술관과 슈퍼 컬렉터들의 

문을  하나씩 열어갔습니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때로는 정복자처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만큼  고호라는 작가브랜드 도  커진 이유입니다   

언제 요한나가 자신 없어 거울 보고 울었던 사람인가요

 이제 그 어떤 딜러보다 민첩하고  

그 어떤 평론가보다 힘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요한나는 오직 솔직하고 솔직했으며 

단지 열정으로 감동시키고 직관으로 정확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어중간한 전문가보다  부족하지만 해내겠다,

 반드시 이루겠다는 아마추어 비전공자가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990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고호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사상 최고가 무려 8250만 달러(약 880억 원)에

 팔리고  가장유명한  컬렉터 

크뢸러 뮐러(Kröller-Müller) 부부는 부르는 대로 돈을 줄 테니 

모든 작품을 넘기라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이제 빈센트 반 고흐는 완전히 세계최고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고호는 죽었습니다 죽은 고호가 이렇게 까지 

부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이 좋았다 해도  당시에 더 좋은 작가도 많았습니다 

그 작가들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고호를 몰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호는  우리 가슴속 깊숙이 

  불멸의 예술가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호가 부활한 요인중 하나는 많은 작품입니다  

만약 작품수가 적었다면 우선 요안나부터 

고호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더 중요한 요인은 편지입니다 

만약에 만약에  고호가 남긴 663통의 편지가 없었다면 

우선 요한나부터 고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요한나가  저처럼 무지한 일반인에게 

고호를 이해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요한나가 죽기 바로 전,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내 남편과 빈센트 반고흐를 제대로 알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빈센트작품을 무시하고 심지어 욕까지 하는 것을 알고  저는  그 사람들과 내 모든 것을 걸고 

전투를 한 것입니다  늦게라도 이제라도 

 그 전투에서 내가 이겼다고 느끼는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흔히 동생 테오의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고흐는 없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요안나 봉허가 고호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데로 시집이나 갔다면  

지금 이 모든 고호의 신화는 처음 시작도 안 했으며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릭 지금 이 음악, 

 돈메클린 이  음악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빈센트 음악)     

이영상으로 저 스스로가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제기 느끼는 것을 여러분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저는 작가 이철희였습니다 

자막 :이영상을 만들면서 저도 고호작품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테오 , 요한나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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