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 간호사, 엄마로 살기 위해 일을 버리다
“저는 밤 근무 때 새벽 동틀 무렵이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쉴 틈 없이 수액을 갈고, 스스로 몸을 못 움직이는 환자들은 욕창 생길까 봐 2시간씩 체위변경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렇게 꼬박 뛰어다니다 보면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요. 하나만 더 하고 간호기록도 좀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하는데… 그 틈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몸을 바삐 움직이는 사이에도 쏜살같이 지나가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동이 트는 거예요. 소변은 하도 참아서 방광은 탱탱하게 차 있고, 커피는커녕 물도 한 잔 못 마셔서 입은 마르고 말이죠.”
“제가 근무했던 병동이 11층이었거든요. 아! 그때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새벽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근데 저는 문득 ‘이 밑으로 떨어지면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아침밥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 애가 깰 때가 되었네. 곧 어린이집 차가 데리러 올 텐데, 남편이 밥은 챙겨줬나? 아이 양말은 신겼나? 하는 갖가지 상념이 우르르 스쳐가요. 제가 담당한 환자들이 처방대로 식이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아침 약을 차리러 간호사실로 달려가면서 집 생각, 아이 생각은 어느새 머리에서 사라져요. 아침 근무자가 올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또 장난 아니거든요. 제가 제대로 마무리 못하면 다음 근무에 차질이 생기거든요. 밤 근무 때도 일이 많지만, 낮에는 검사에 처방에 입원과 퇴원 업무에 더 바쁘고 힘든 걸 제가 잘 아니깐.”
“이모님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서 분노가 올라왔어요. 누군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죠. ‘왜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엄마가 되었는지’ 말이죠. 그때까지 전화도 받지 않는 남편한테도 화가 났어요.
선배 간호사들의 삶을 보며 우리는 알고 있었어요.
때가 되면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요.
엄마로 살아갈 것인가? 간호사로 일할 것인가?
둘 다 해내기에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요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마치 작업을 완수하는 것 같이 시련을 완수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