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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Sep 25. 2023

곰이 인간 된 비결, 동굴의 의미 : BEAR!

유엔 기구 인턴, How a Bear became human, BEAR!

1. “이곤, 너무 늦었어. 인턴은 얼른 방으로 가서 자!” 내게 얼른 가라고 하는 벤자민의 눈가에 잔주름 몇 개가 늘어난 듯 보였다.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은 어수선했고,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해 고요했다.     


 일순간 직원들은 숨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인턴은 방으로 가!, 국장님 인턴이 피곤할 텐데 이곤을 방으로 보내죠?” 본격 회의가 하나 끝나고 그날 밤이었다. 아니 새벽이었다. 당일 마친 회의를 정리하고, 내일 있을 행사를 준비하느라 모두가 잠을 자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 몇몇 분들께서는 아예 회의 전날부터 식사도 거르시고 밤을 꼬박 새우신 분들도 계셨다.


▲ 일하러 가는 본부 직원인 벤자민(왼쪽)과 나(오른쪽), 배경이 꼭 동굴 같다


2. 국장님과 담당관님도 잠을 주무시지 못한 채, 호텔 내 마련된 사무실에서 계속 회의하셨고, 나머지 직원분들도 문서 작업과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하셨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무표정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게 정말 프로들 같아 보였다. 사실, 언제나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인턴 기회였기에 지금 밤을 새우는 경험마저 내겐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인턴의 눈꺼풀은 왜 이리 무거운지. 차라리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면, 마그네슘 핑계라도 댈 수 있는데 자꾸 눈이 감겼다.


3. 내가 무중력 훈련받는 우주비행사처럼 힘들었는지 국장님도 내게 이미 늦었으니 들어가라고 하셨다. 새벽 세 시였다. 바쁜 와중에도 계속 나를 챙겨주던 벤자민은 내게 넋이 나간 ‘곰’ 같다고 했고, 나는 단군신화를 생각했다. ‘쑥과 마늘아, 어디 있니? 이제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솔직히 갈까 말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더구나 국장님마저도 내게 가라고 하시니 동굴은 열려있는 것과 다름없다. 언제나 원한다면 나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그런데 벤자민 말을 들으니, 지금 동굴을 빠져나가면 평생 호랑이 탈을 벗지 못하고 인간은 무슨, 짐승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 호랑이나 곰이, 나아가 짐승이 인간이 되려면 뭐가 필요한가? 더 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인가? 아니다. 숲 속의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호랑이는 인간이 될 수 없었다. 곰처럼 인간이 되고자 했지만, 마늘과 쑥의 매움을 참아내지 못했고, 동굴의 갑갑한 어둠을 견디지 못했다. 곰은 그걸 끈기 있게 다 참을 수 있었기에, 결국에 인간이 되었다. 여기에 그 어려움이 내재한다. 마시멜로우의 법칙인가? 당이 떨어지나? 아니다. 마늘과 쑥이다. 그냥 참자. 지금은 나와 싸워야 한다. “안 갈래요. 하나도 안 졸려요.”하고 나는 더 열심히 일했다.


5. 모든 업무를 함께 마쳤고, 다음날 회의 준비도 모두 원활하게 했다. 더군다나 내가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본 직원분들도 웃으시며 마음을 활짝 열었고, 나를 더 챙겨주셨다. 쉽게 쉽게 살아가는 ‘나’보다 고난 속을 걷는 ‘나’를 선택하다니, ‘나’ 제법 멋진걸? (죄송합니다) 일을 다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니 유리창 뷰로 살짝 올라온 해가 보였다. 하품을 크게 하는데, 너무 입을 벌린 나머지 눈가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웅녀가 흘린 환희의 눈물인가. 달다... 수천 년 전 곰이라는 짐승의 탈을 벗고 찬란한 아침 햇살 속에서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웅녀를 생각했다.


6. 물론, 나를 배려해 주신 직원들께 정말 많이 감사하다. 하지만, 유혹과 싸우며 스스로 동굴의 어두컴컴한 동굴의 어둠을, 그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때 그 어둠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나는 배웠다. 요새 나는 우리 외할머니와 어머니 때보다 편해진 세상에, 참는다는 것을 잊어 간 게 사실이다. 기계들과 편한 것들이 다 그 고통을 덜어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 ‘동굴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밤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침의 의미 또한 잘 모른다.


▲ 직원분들께서 잘 챙겨주셔서 많이 배웠고, 익일 비로소 '사람'이 된 '나(두 번째 열에서 맨 왼쪽)'


7.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어디엔가 가둬 묵묵히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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