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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Oct 18. 2023

칵테일파티에서 한국인의 김치를 찾는다면?

UNWTO 인턴 중 생각한 김치,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발효 정신

1. 여러 인종이 한 언어로 고된 회의와 행사를 마친 날은 정말이지 온몸의 모든 신경까지 피곤해져서, 계속 이렇게 온 신경을 기울이다가는 완전히 지쳐서 일상적인 일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한숨을 돌리고 기분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칵테일파티다! 누군가와 같이 어울려서 대화도 나누고, 토론도 하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다가 가끔은 뒷담화도 하면서 인맥도 쌓는다.


2. 오늘은 내년의 UNWTO 행사 개최지인 유엔 회원국, 필리핀 관광부에서 칵테일파티를 개최했다. 아니 더 자세히 보자면, 만찬에 가까웠다. 크리스티나 프라스코 필리핀 관광부 장관이 연설했고, 이후에 필리핀의 유명 가수와 댄스팀 다양한 공연과 볼거리가 무대에서 지속됐다. 음식은 필리핀에서 굉장히 유명한 미쉐린 5성급 호텔 3 스타 셰프팀을 데려와서 음식을 준비해 주셨는데, 기가 막혔다. 그래서 최대한 이 분위기는 색채들과 함께 구도와 사람들로 머릿속에 잘 넣어뒀다.


▲ 필리핀 관광부 장관의 연설이 끝난 뒤에 시작된 공연 중 일부


3. 이번에 인턴을 하면서, 정말 맛있는 밥들을 많이 먹었다. 여러 유엔 회원국에서 쏘는 밥들이 있었고, 때로는 아태지역 유엔 전문 기구 팀들과 함께 맛집에 가기도 했다. 국제 기업들에서 맛난 걸 쏘기도 했다. 음... 그런데 흰색, 녹색, 노란색, 어쩔 땐 갈색부터 잿빛 색조까지 거의 모든 색을 보고 먹었는데, 내게 익숙한 강렬한 빨간색은 쉽게 보이질 않는다. 김치다. 김치가 먹고 싶다. 나는 음식들이 느끼해서 뭐 한식이 그리워서 같은 그런 유치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4. 김치가 있으려면 김장을 해야 하고, 김치를 담그려면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야 한다. 김장은 절대 혼자서는 못하니 말이다. 이웃들이 모여 만나서 대화하고, 푸념도 하면서 일한다. 김장은 음식을 먹으며 고상하게 차려입은 사람들끼리 토론하고 이런 칵테일파티 같은 것도 아니다. 칵테일파티에 이어 만찬과 같은 연회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행사가 되지만, 김장은 정반대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어가며 절로 행사를 이룬다.


5. 볼로냐의 협동조합 체계를 이해한 것도 아니고, 미국 공장식 분업화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한국인이었으나, 자기가 해야 할 몫을 알고 전체의 작업에 참여한 걸 생각해 봤다. 김장이란, 나아가 그 김치란 탄생 음식은 참 대단하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느낀 바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나 먹는다는 행위는 다 같다. 하지만, 요리 방식과 양식은 천차만별이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눠보자.


▲ 만찬에서 맛있게 먹은 대표적 화식의 육류 요리와 생식의 해산물 요리


6. 서양은 주로 육류 요리가 많고, 그래서인지 불을 이용한 요리법인 화식이 발달했다. 바비큐 같은 거 말이다. 동양은 하늘이 주신 그대로의 날것을, 생식으로 먹는 게 많다. 한국인은 어떨까? 생식과 화식을 주로 했다면 김치와 같은 음식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은 김치 이외에도 장도 그렇고, 음료에 술도 발효시켜서 먹는다. 그 맛들은 생식과 화식과는 완전히 달리, 발효해서 만든 음식들이다.


7. 그 음식들에서 나는 감칠맛과 독특한 맛은 즉석에서 만들 수 없을뿐더러, 바로 먹을 수가 없다. 대체 발효해서 먹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 음식이 발효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늘 배고팠던 우리 한국인은 단숨에 음식을 삼켜버리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익기를 기다렸다.


8. 김장독에서 서서히 배추가 발효해 가듯이, 그 밀폐된 어둠 속에서 외로이 그 시간을 버텨내는 정신. 그게 한국인의 정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이 행사가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꿈, 언론인을 위해 스스로를 가둬야 한다. 얼마나, 또 어떤 난제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여기서 멋지게 연설하시는 유엔 소속의 국장님, 담당관님께서는 한국에서 태어나시고 이렇게 국제무대를 멋지게 누비고 계신다. 지금 저 자리에 계시기까지 얼마나 스스로 가두고 그 외로움을 버티며, 홀로 갈고닦았을까. 억센 푸른 생배추가 김장독에서 서서히 전혀 다른 맛으로 발효해 가듯이 말이다.


▲ UNWTO 임원분들과 만찬에서, 맨 왼쪽이 나


머리가 어지럽다... 지금은 잠시 생각들을 김장독에 가둬놓고, 그저 맛있게 밥을 먹자 냠냠.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Di dove sei?”


“I’m from Korea!”, “Io sono di corea!”


“Oh, Korea?!”, “Wow, Coreano! Fantas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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