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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Oct 19. 2023

지금 힘들면 속도를 더 낼까? 힘을 더 뺄까?

UNWTO 인턴 중, 커다란 새의 날갯짓과 힘 빠진 타이어를 보고

1. 모든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과 명함도 교환하고 인사를 마쳤다. 지난 교환학생과 이번 유엔 전문 기구 인턴 경험을 통해서도 정말 많이 발전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예전 같지 않냐고?’ 아니, 천만의 말씀. 내 생각과 사고방식은 달라진 게 없지만, 그냥 전에 막연히 생각하고 좋아하고, 때론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이 훨씬 깊어졌다.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꿈꾸고 믿게 됐다. 이제 내 고민거리는 간단하다. ‘한국에 돌아가서 방송 기자를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어디에 도움이 될까? 수백 대 일의 기자 공채 경쟁률을 뚫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런저런 것들을 더 많이, 더 깊게 알 수 있을까? 산책이 필요하다.


2. 나는 어딜 가면 항상 그 주변을 걷는 습관이 있다. 꼭 산책하곤 하는데, 오늘은 노란 태양이 뜬 노란 하늘 아래 강변을 걸었다. 모든 프로그램과 행사를 잘 마치고 긴장이 확 풀려서인지 산책을 하며 내가 받는 느낌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강변으로, 땅 위로 쏟아지는 노란 햇살이 황금비같이 노란 게 참 예뻤다. 반 고흐의 ‘해 질 녘 몽마주르에서’ 그림처럼 더없이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어디선가 갑자기 신화에 나올 법한 신들이 느긋하게 수영하고 커다란 강줄기를 따라 배짱이 시인들의 콧소리가 들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말이다.


3. 짹짹 울며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참새 떼도 보였다. 작은 참새들을 보고 있자니 ‘아름다움’, ‘평화로움’과 같은 단어들을 연상시켰고, 마치 그 단어들이 총총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커다란 새가 참새 무리로 달려들었다. 커다란 새는 공룡 같았는데, 정말이지 과장하는 게 아니다. 꽥꽥대는 날 선 목소리와 함께 쿵쾅대는 발소리가... 커다란 새가 위에서 잽싸게 날아왔다. 새들은 힘껏 도망쳤고, 그 생존을 향한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잠시 속도를 낮췄다. 지쳐서일까? 조금만 더 힘을 내지. 그 새는 결국 잡아먹혔다.


▲ 프놈펜의 커다란 새가 작은 참새를 먹고 있다.


4. 눈앞에서 벌어진 이 광경을 보고서, 그 순간 무슨 짜릿함? 아니 깨달음 같은 게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속도를 늦추지 말라’ 인생을 방어적으로 다루거나 내지는 두려움으로 맞이하면, 자칫하면 너무 위험해질 수 있다. 인생은 전속력으로 부딪치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아름다운 보상을 해준다. 세계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도 자기가 잘 다치지 않는 이유는 ‘절대로 속도를 줄여서 경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5. 생각해 보면, 온 힘을 다해 말 그대로 전속력으로 부딪치며 사는 것이 더 재밌고, 때에 따라서는 훨씬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방송 기자 공채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좀 뒤로 물러서라고, 내게 속도를 좀 줄이고 신중하게 다가가라고 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 광경은, ‘속도를 늦추지 말라’라는 의미가 더욱 깊게 가슴에 와닿았다. 어떤 속도에 도달하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이전에는 이런 속도로 나아가 본 적도 없기에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6. 그런데, 이 세상은, 내 모든 걸 총동원해서 과감히 부딪쳐야 하는 곳이다. 거기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커다란 새는 작은 참새를 맛있게 먹고 입맛을 다시고선 텅 빈 하늘 속을 향해 커다란 그 날개를 상하로 끝없이 파닥이며 나아갔다. 멈추지 않고 계속 위아래로 움직였다. 참새가 그 커다란 새의 부리 속에서 강하게 몸부림치던 리듬이 저 화려한 날갯짓으로 연결되는 것 같았고, 뭔가 메스꺼웠다. 그 날갯짓을 보니 꼭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 떠올랐고, 그 모순의 날갯짓이 있으므로, 인간은 오히려 지금 잘살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고 싶어, 조금 걸어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 커다란 새가 참새를 먹고선 강하게 상하로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간다.


7. 기사님께선 오토바이에 가까운 택시를 운전했는데, 호텔로 가는 길 중 언덕길에서 택시가 잠깐 멈췄다. 경사가 높은 흙이 있는 언덕을 조그마한 택시가 올라가기가 힘든가 보다. 기사님은 잠깐 나보고 안에 있으라 하고선, 밖에 나가 타이어를 건드렸다. 뭘 하는지 자세히 보니 그는 타이어 바람을 조금 뺐다. 그러고 나니 차가 정말 그 흙 오르막길을 잘 굴러갔다. 새의 날갯짓만큼이나 차에서 느낀 그 타이어가 빠르게 회전하는 그 진동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정말 힘이 들 때는, 속도가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는 힘을 빼줘야 하는구나.’


▲ 호텔로 갈 때 내가 탄 택시, 저 타이어에서 바람을 좀 빼니 흙 언덕길을 잘 올랐다.


8. 때에 따라 속도를 더 내고, 멈춰서 힘을 더 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게 더 옳은 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나의 상태와 내 앞의 상황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직면한 상황에서 생각해 보자. ‘더 속도를 내 날갯짓할까? 아니면 타이어에 힘을 좀 빼고 다시 올라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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