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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곤 Jan 14. 2024

빙글빙글 돌아가는 신입의 하루, “돌아버리겠다"

직장인이라는 새 옷을 입고, 출근!

1. 원래라면 미국에 가야 하는데, 비행 편을 취소했다. 지난해 10월의 어느 날, 그토록 바라던 방송사에 기자로 합격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취재부터 방송까지 제대로 배울 생각에, 바로 비행기표 위약금을 물었고, ESTA 비자 환급에 관해선 신경도 안 썼다. 식당에서 비싼 코스를 먹고, 신중하게 디저트를 하나 고르는 것보다 결정은 쉬웠다. 당연히 미국은 안 가는 걸로!


▲ 날짜가 겹쳐 환불하고 위약금을 낸 비행기표


2. 참 마음에 와닿았던 합격 축하와 응원도 있었다. 특히, 참 감사했던 분께서 메일을 보내주셨다. 마드리드에서 인턴을 할 때 뵈었던 분인데 정말 멋있고,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인간으로서 참 닮고 싶은  선생님이다. 한국에 오실 때 내가 받은 월급으로 맛난 거 사드리기로 약속했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서도 응원해 주시니, 뜨거운 열정을 품고 얼른 출근하고 싶었다. 스트레스도 크게 안 받고, 교육을 즐겁게 받을 거로 생각했다.


▲ 태 선생님께서 내게 써 주신 따뜻한 응원 메일 중 일부 1


▲ 태 선생님께서 내게 써 주신 따뜻한 응원 메일 중 일부 2


3. 아, 오산이었다. 경기도 오산 말고 진짜 오산 말이다.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주말을 좋아하고, 휴가를 즐길 때 누구보다 진심으로 즐기는지 이해가 갔다. 수습 교육받고 회식을 갔다가 밤에 퇴근하고 누우면, 명확한 이유 없이 주기적으로 잠에서 깼다. 어쩔 땐, 잠의 신이 나를 버린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신입사원치고는 연봉이 센 편이지만, 처음엔 지치고 피곤했다.


▲ 직장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명함, 내 명함이다

4. 너무 피곤할 때는 귀에서 “삐-”하고 이명이 들렸는데, 꼭 비행기가 이륙하며 내는 굉음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직장인이 된 이상, 길게 어딜 가는 건 출장과 특파원, 유학 외엔 불가능에 가까웠다. 취소한 비행기표가 아른거렸고, ‘지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재활용 전에 플라스틱병을 손으로 구기면 우지직 소리를 내는데, 마치 내 멘탈 같았다.



5. 사회생활은, 직장인은 학생 때, 인턴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좀 아는 곳이라 생각했던 길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고, 그 길을 달리는 신입사원인 나는 브레이크를 자주 밟음과 동시에 아주 주의가 산만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신입사원의 하루다. 길을 잘못 들고, 회전을 잘못해 갈림길을 놓치고 뭐 이런 식이었다.


6. 그래도 하고 싶던 일이라 즐겁게 수습 교육받고 배웠다.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대단히 자랑스러울 만큼 많이 발전했고, 함께한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공기와 추운 바람에 묻어나는 새해의 냄새가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이제는 보도국 안에서 수습 기간도 끝났다. 잠에서 깰 땐 억지로 잠에서 깬 기분보다는, 이제는 드디어 다리를 쭉 뻗고 자고 일어난 기분이 든다.


▲ 열심히 말하며 리포트 중인 나의 모습을 캡처했다

7. 이제 방송에도 나온다. 주위에서 나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면 쑥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하다. 때로는 멀리서 숲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서 나무를 보기도 하는 이 기자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아직은 리포트 사진처럼 마이크도 어색하게 잡고, 깊게 기획해서 취재하는 건 부족하다. 곧 나만의 스타일과 아이덴티티를 갖게 될 거라 믿는다.




8. 물론 더 많이 배워야겠지만, 이 루틴에 적응이 좀 됐다. 수습 교육 때, 새벽에 출근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브런치 구독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사람들도 첫 사회생활을 할 때가 있었을 텐데, 오늘 회사에서 뭘 했을까? 무슨 일로 웃고, 울고 있을까?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는 무엇으로 풀까?


▲ 사촌 형에게 온 카톡


 마침 브런치 8 문단을 다 써 내려가는데, 저와는 완전히 다른 분야인 반도체 대기업에 다니는 사촌 형도 아침에 눈 뜨면 지옥이라고 카톡이 왔어요. 내일은 월요일이네요. 구독자분들 각자의 갑옷을 잘 챙겨 입으시고, 모두 지옥의 불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월요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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