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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Oct 04. 2021

강원도에 불시착하다

시작은 당시 운영하던 에어비앤비를 강원도로 옮겨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2년 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끝내자니 앞서 말한 할머니의 가구를 마땅히 둘 곳도 없었고, 수시로 드나드는 동해안에 거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주라는 거창한 단어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집을 구하려면 어디부터 알아봐야 할까? 적당히 짐을 둘 수 있는 방 2,3개 규모의 작은 집을 생각했었다. 네이버 부동산, 직방, 피터팬을 들락거렸고, 서핑을 하러 양양을 찾는 날이면 주변 부동산에 들러보거나 미리 문의한 집을 보기도 했다. 계약 완료 시점은 다가오는데 양양, 속초, 강릉을 샅샅이 털어봐도 인연이 될만한 곳은 나오질 않았다. 일정이 뜨면 짐을 둘 곳이 문제라 마음이 급해졌다. 


조급해지니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서울에서 강원도의 집을 찾으려니 매번 가볼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피터팬에 올라온 사진과 설명만을 본 채 홀린 듯이 가계약을 하고 만 것이다. 강릉 어느 상가 건물의 1층을 새로 주택으로 개조한 곳이었고, 도배 등을 새로 해 사진으론 깔끔해 보였다. 홍대 앞 에어비앤비를 정리하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강릉까지 가는 용달만 섭외해두고 새 집이 어떨지는 태평했다. 일단 짐만 좀 옮겨 두고, 그 집을 베이스캠프 삼아 또 다른 곳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별다른 대책 없이, 일단 질러본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대망의 이사 날에는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이것저것 꼬투리 잡는 임대인 때문에 멘탈이 탈탈 털렸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다 고속도로를 타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푸르른 바다와 새로운 동해안 라이프가 펼쳐질 꿈과 희망(?)의 강원도로 향했다. 왕복 5,6 시간을 걸려 다니던 걸 이제 할 필요 없이, 바다 가까이 지낸다는 사실에 가슴이 부풀었다. 파도를 타고 지내면서 차차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나가야지.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짐을 잔뜩 실어 도착한 곳은 허름한 상가 건물 앞이었다. 느낌이 싸했다. 사진 속의 집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긴 아니다' 신호를 강력하게 받으며 들어선 집은 볕도 잘 들지 않아 침침했고, 새로 도배했다는 벽에서는 싸구려 벽지가 울어대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잠시만요, 기사님, 짐 내리지 마세요."

이고 지고 온 온갖 짐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진 몰랐지만, 일단 이곳은 아니었다. 용달 기사님도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계약을 하러 나온 임대인과 대치 상황이 되었다. 사진과 180도 다른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상가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사실을 임대인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덕분(?)에 계약을 무를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뱉은 것도 잠시. 산 넘어 산, 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이사하며 1차, 강릉에 도착해 2차 멘붕을 겪고, 이제 낯선 곳 한복판에서 갈 곳 잃은 용달차와 서 있는 기분이라니. 불시착을 해도 이보다는 나을까.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 파트너가 기적적으로 한달살기 집이 나온 걸 기억해냈다. 얼마 전 주문진 바닷가 앞 외국인들이 잔뜩 모인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다 그 주인장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데, 그가 이틀 전 자신의 집을 한달살기로 내놓았던 것이다. 다행히 집은 비어있었고, 베란다로 빼꼼히 주문진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를 임시 거처 삼기로 했다. 짐을 낯선 아파트에 풀어놓고 나니 그래도 어찌할 줄 몰랐던 위기들을 넘겨 무사히 밤을 맞은 것에 웃음이 났다. 우여곡절 많았던 하루, 간신히 동해안에 안착했다. 


그래, 강원도에서의 첫날이다. 수산 시장에서 회를 떠다 술잔을 부딪혔다. 

앞으로 닥칠 일들도 내일의 내가 잘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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