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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Aug 23. 2018

예술로 도시를 만나는 방법

방콕 갤러리 탐방

어떤 요소들이 도시의 인상을 만들까? 여행을 한다면 볼거리나 재미난 액티비티들이 있는가, 지내기에 비용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정도를 따져보겠지만 조금 더 오래 지내거나 슬며시 살아본다고 생각하면 질문은 다음과 같이 확장된다. 식물과 공원이 많은가, 바다나 산, 호수처럼 자연 속 쉴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장이 있는가, 훌륭한 커피와 맛있는 식당, 취하기 좋은 바가 있는가,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서점이 있는가, 사람들의 태도나 동네가 풍기는 분위기는 어떤가... 주관적인 기준이다. 대개 자연이나 랜드마크 등에는 공감하겠지만 빠리나 피렌체 같은 도시 아니면 여행할 때 예술을 굳이 찾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취향과 관련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우연히 마주한 전시나 공연 때문에 도시의 인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꽤 많았다.


KLCC park, Kuala Lumpur


특히 방콕이 그랬다. 문화예술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지난 방문 시 여러 갤러리들을 둘러봤었다. 동남아시아의 현대 미술을 접한 건 처음이었는데, 스트리트 아트까지 꽤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작가들이 매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사진 갤러리에서는 마침 현장에 있던 작가가 수줍고 앳된 모습과 다르게 열성적으로 작품들을 설명해줬고, 페친 덕에 초대받은 전시 오프닝에선 참석자들이나 규모를 보고 작품 구매 시장이 꽤 크겠다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따뜻한 휴양지나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인상은 순식간에 문화적인 해프닝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바뀌었다.


J avenue 내에 있던 갤러리 오프닝 파티, Thong lo


여성들을 그린 태국 작가 Kowit Wattanarach 의 그림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과는 또 다른 여성의 묘사였다. 그림 속 여성들의 화장이나 옷차림 같은 것들이 아름답지만 선정적이고, 표정은 유혹적이지만 슬퍼 보여서 태국 여성들의 삶을 잠시 상상해봤다. 유달리 싹싹하고 언제나 웃는 얼굴의 여인들은 아마도 내가 관광객(그들이 보기에)의 신분을 숨길 수 없어서일 것이다. 짓궂은 남자 선배들끼리 돈을 모아 태국을 가자는 둥 이야기할 때의 그 태국은 분명 내가 아는 태국과 다를 테다. 종종 마주치는 늙은 서양 남자와 젊은 동양 여자의 우스꽝스러운 조합이나 성 관광으로 악명 높은 실태를 떠올리면 그림 속 여성들은 얼굴의 미세한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Sukhumvit 지역에 위치한 Koi Art Gallery


첫 방문인 방콕에서 예술엔 큰 기대를 안 했었는데 예상외로 갤러리들을 다니는 게 너무 흥미진진했다. 줄여서 TCDC라고 불리는 태국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센터에서는 종일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나절을 투자해 BANGKOK CITYCITY GALLERY를 방문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갤러리에는 거대한 설치 작품과 비디오 인스톨레이션, 페인팅 등 다양한 형태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그래피티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 눈에 익은 Alex Face의 설치가 나를 먼저 반겼다. 토끼 귀 캐릭터가 꽉 차게 들어있는 집 안에는 짜오 프라야 강의 예전 모습이 그림으로 걸려 있었다. 대규모 공사로 강 주변의 커뮤니티가 사라지기 전, 기억 속의 과거를 복원한 듯했다. 또래로 보이는 오너가 함께 다니며 친절히 작품을 안내해줬다. 영국 작가의 찻잔으로 가득 찬 기념탑, 폐선박으로 만든 예전 어부의 집 등 사회가 변하면서 사라지는 대화와 관계,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인해 흩어지는 공동체를 표현했단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예전의 풍경, 공동체가 사라지는 전 지구적인 현상을 방콕도 아프게 겪고 있나 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 거대한 쇼핑몰 옆에 판자로 이어 붙인 빈민촌이 함께 있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급속하게 사회가 바뀌면서 심화된 양극화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Alex Face의 토끼 옷을 입은 슬픈 표정의 캐릭터는 딸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하는데, 시무룩한 아이의 표정을 보고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방콕 아티스트들의 고민들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고, 다른 문화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한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방콕을 소개하는 여행책이나 구글, 트립 어드바이저를 통해 리서치를 할 때는 가장 사람들이 몰리는 곳, 맛집들의 리스트만 쏟아지게 마련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고민이 궁금하다면 갤러리들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화려한 도시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들을 공유해줄 테니까. 



BANGKOK ART AND CULTURE CENTRE | BACC http://www.bacc.or.th/ 

Bangkok citycity gallery http://bangkokcitycity.com/ 

Thailand Creative and Design Center https://web.tcdc.or.th/th 

WTF CAFÉ & GALLERY http://wtfbangk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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