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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Aug 22. 2018

방콕에서 만난 사람들

다시 찾은 방콕

가혹한 겨울을 벗어나 뜨거운 여름으로 다시 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온 몸을 감싸는 무겁고 습한 공기, 이 열대의 냄새가 그리웠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고 쨍한 아침을 어서 맞고 싶은 마음에 가장 가까운 택시를 잡고 호텔로 향했다. 치앙마이가 태국 방문의 주목적이었지만 가보고 싶었던 곳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방콕을 짧게 머물다 가기로 했다. 방콕에는 훌륭한 컨셉의 공간들이 참 많은데 예전 잡지에서 눈여겨봤던 호텔과 검색한 숙소 몇 군데를 들렀다. 그 호텔의 후기들은 여기에.


방콕은 두 번째 방문이다. 2013년, 계획 없이 휴가를 보내러 왔던 이 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현지 친구들 덕분에 내 인생에 재미난 추억이 조금 더 생겼다. 따라간 현지 식당들은 근사한 팟타이와 이름 모를 요리들을 척척 내왔고, 지인의 결혼식을 따라가 다른 문화를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스님의 염불 속 부부의 손에 실을 묶어 연결하던 결혼식은 인상적이었고, 이어진 진수성찬은 감동적이었다. 여행자의 운이 굴러들어 왔을 때 어울리지도 않는 친구 동생의 옷을 빌려 입고라도 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혼자 여행의 제약 없이 RCA 같은 클럽 씬도 긴장을 풀고 즐길 수 있었고, 야시장에서의 흥정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짜오프라야 강에서 수상 버스를 잘못 내리지 않았으면, 그래서 길을 찾다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없었을 이야기다. 



그녀는 이번에도 특별한 이벤트에 나를 초대했다. 그동안 결혼을 한 그녀는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 출산(!)을 했고, 친구들과 아이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간 선물을 들고 그녀의 콘도미니엄 아파트를 찾았다. 태국에는 수영장을 갖춘 고층 아파트들이 꽤 눈에 띄었는데 이번 방문 시 지하철 광고 등을 보니 더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았다. 특히 코워킹 스페이스나 공용 커뮤니티 공간을 갖춘 주거 공간들의 광고가 많이 보였다.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공간이 외국 자본에 의해 따로 만들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방문에서 묵었던 airbnb도 수영장, 조경, 내부 시설이 잘 갖춰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는데 우연히 단지 내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 아파트에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건설한 회사의 대표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얼핏 렌트 비용을 들었는데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가격대여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가가 싼 것과 달리 방콕도 주거 비용은 만만치 않나 보다. 


친구의 남편이 미국인 이어선지 나와 애인을 포함, 다국적의 방문객들로 집이 북적였다. 영어를 가르치며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거쳐 방콕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외국을 나가면 이런 유형의 영어권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어디서든 영어를 가르치며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참 부럽다(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옆에 꼬물꼬물 하는 아가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사실, 그녀가 나보다 한참 어릴 거라고 짐작할 뿐 나이를 물어본 적이 없다.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 서열 정리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로 나이를 몰라도 불편하지 않고, 몇 번 본 사이도 아닌데 호의로 자신의 일상을 내어주는 것도 참 특별한 일이다. 여행은, 그리고 어쩌면 삶은 누구를 만나고 누가 옆에 있는가가 그 모습을 결정하는지도 모른다.


2013년 친구를 따라 태국 결혼식을 갔고, 2018년 아기를 품에 안은 그녀를 다시 만났다


다른 날은 애인의 친구들을 만났다. 조금 먼저 베트남에 가 있던 남자 친구가 방콕으로 합류한 저녁, 나도 한국에서 한번 만난 적 있던 동생들을 만나 긴긴 취한 밤을 보냈다. 그들은 태국 친구와 사업을 하기 위해 방콕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재즈 클럽 색소폰을 다시 찾았고, 다 함께 카오산 로드로 가던 중 그들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는 중고로 산 오래된 벤츠였는데 경적이 고장 났는 데도 전혀 불편한 점이 없어 고칠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차선을 바꾸거나 비보호로 방향을 바꿀 때 태국인들은 늘 양보를 해주고, 심지어 정체가 생겨 무슨 일인지 내다보면 서로 양보를 하느라 차가 안 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거친 한국의 도로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며 낄낄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전 카오산 로드에 들렀을 땐 너무 혼잡해 금방 다른 곳으로 피신했었는데 이번엔 괜히 기분이 들떴다. 인파에 휩쓸려 다니며 맥주와 싸구려 칵테일 버킷을 계속 들이켰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일탈과 쾌락을 위해 이 카오산 로드를 찾는 것 같았다. 그래, 나도 오늘은 기꺼이 그중 하나가 되어 건배를 외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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