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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Aug 21. 2018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산다면

퇴사 후 방랑기의 시작

방콕-치앙마이-쿠알라룸푸르-발리를 다니며 약 70일간의 여행을 마쳤다. 첫 퇴사 이후에도 3개월 정도 스페인과 유럽 곳곳을 유랑했었고, 이번 역시 창업한 회사와 몸 담았던 회사의 한 시즌을 마친 두 번째 미니 은퇴인 셈이다. 평생 직장 생활을 하고 은퇴 후 패키지여행을 다니는 삶의 트랙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낡은 몸을 이끌고 그동안 반납해뒀던 개인 시간을 펼쳐 내는 건 왠지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조금 더 호기심 가득할 때, 낯선 골목을 헤매다 현지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때 자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도 비교적 자주, 오래 떠날 수 있었다. 최근 일했던 기업은 투잡을 전제로 주 4일 오후 출근으로 계약을 했었고, 한 달의 휴가를 다녀오기 위해 계약 시점을 조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다. 덕분에 가장 추운 겨울을 따뜻한 나라에서 날 수 있었고, 낯선 도시에서 한 달을 지내는 호사를 차곡차곡 누려왔다. 사는 곳에서 다른 풍경, 다른 나라를 꿈꾸는 자는 고되지만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이 아직은 훨씬 크다. 다른 빛깔의 바다에 발을 담가보고, 유서 깊은 술들을 마셔보고, 한국에선 절대 몰랐을 작은 식당들을 다닌다. 살아온 삶의 모습이 판이할 현지의 사람들과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길을 잃으며 낯선 공기를 호흡하는 순간들이 모험의 세포들을 깨우는 거다. 그렇게 도시를 탐색해가며 나와 그 도시만 아는 비밀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다.


바르셀로나 근교 해안을 따라 달리던 기차


교토, LA, 프로비던스, 런던, 빠리, 바르셀로나, 발리, 하와이, 양양, 제주 등의 도시에서 한 달 이상을 살았다. 양양, 제주는 한 달 집을 구해두고 서울과 오가며 지냈으니 물리적으로는 치앙마이나 방콕, 베를린에서 지낸 시간 정도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짧게 여행을 가는 것과 내가 최소 한 달은 이곳의 일상 생활자가 된다는 것은 느낌이 참 다르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다시 찾아 현지인처럼 여유를 부려보고 싶고, 서핑 샵이나 요가원처럼 최애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단골 가게를 만들고 싶다. 로컬 시장에서 신선한 과일과 재료를 사와 요리하고, 동네에서 빈둥 대며 날씨를 만끽해본다. 그 멀리까지 가서 일상적인 일들에 희희낙락하는 것이 아이러니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계속해서 내가 살고 싶은 도시를 탐색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우이 섬 숙소에서 바라본 바다


이번 여행의 화두야말로 서울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본다면 어디가 좋을까, 무엇을 하고 살까, 하는 질문들이었다. 10년 넘게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했으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문화적 유산이나 축제 같은 즐길 거리가 많은 도시에서 열대의 기후와 자연이 있는 도시로 마음이 옮겨 왔다. 지방에서 태어나 대도시를 동경했고, 문화 인프라나 나이트 라이프를 즐겨 도시형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탁 트인 리젠트 파크에 누워 햇살 속 자유의 은혜를 느낀 이후 자연 속 널브러짐을 찬양하게 되고 말았다. 말을 잃을 수밖에 없는 지중해의 찬란함을 목격해 버렸고, 특히 서핑을 시작하고 자연의 경이에 무릎을 꿇으면서 식물과 바다가 있는 곳을 여행의 우선 순위에 두게 됐다.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게 여름의 나라들은 언제나 이상적인 곳이었다. 살아보고 싶은 도시 4곳이 추려졌다. 입과 눈이 즐거운 핫 플레이스들이 가득한 방콕, 아기자기하고 히피스러운 구석이 있는 치앙마이, 열대 기후 속 세련된 도시인 쿠알라룸푸르, 자연 속 서핑과 요가, 관광 인프라들을 즐길 수 있는 발리. 치앙마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갔던 적이 있는 도시들이지만 여행을 할 때와 내가 이 곳에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는 것은 다를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버려서 다시 그 경험들을 기록하고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한다. 많은 여행의 순간들을 글로 남기지 못했던 아쉬움도 노는 김에 풀어보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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