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2020, 사계절) 필사와 감상
2021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올해의 한 책을 뽑는 다양한 이벤트에서 책 《어린이라는 세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금 앞선 시점인 2021 성북구 한 책 시상식에서는 이미 올해의 한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내용을 일기장에 적어두었었는데, 그 내용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올린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를 만나면서 얻는 좋은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왼쪽 신발끈을 혼자 묶은 현성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21쪽)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72쪽)
나도 어렸을 때 저만큼 부모를 사랑했을까? 처음 먹고 보는 작고 예쁜 초콜릿을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서 방법을 고민했을까? 손에 쥐고 가면 녹을까 걱정했을까? (...)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마치 손에 쥔 채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180쪽)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 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181쪽)
이 책을 처음에는 4월쯤 읽었던 것 같은데, 내내 울었었다. 어린이들이 뛰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꽉 찬 하루하루들이 마음 속으로 마구 밀려들어오고, 어린이들의 삶을 빼앗는 세상이 너무 미웠다.
어린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용감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이런 일은 쉬워서 하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을 외면하지 말자. 대충 넘기려고도 하지 말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서 아무렇게나 하는 것도 안 된다. 정성을 들이고 품위를 갖자. 그렇게 마음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있어서 다행인 하루하루다.
김소영 선생님의, 투명하고 담담한 문장들이 참 좋았다. 담담하다 해서 냉정하고 감정 없이 느껴지는 게 아니란 것도 신기했다. 어린이 앞에서 늘 조바심이 나고 혼란에 빠지고 귀여움에 지고 마는, 그렇지만 자신의 당황이나 감탄을 절대 내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한 사람의 어른. 무한정 자비로운 보살 같은 인물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에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를 내기도 하고, 걱정과 우려에 전전긍긍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 쓴 글인 것 같아서 좋았다. 글의 마무리를 짓는 문장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지만.
모든 글에 하나씩은 꼭 빛나는 문장들이 있었고, 그 문장들은 종이에 다시 옮겨 적을 때 다시 한 번 더 빛이 났다. 소리 내어 직접 읽어보기도 하며 오래오래 음미했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어린이라는 세계의 겸허한 방문객으로서, 앞으로도 그들이 바라보는 시야 한 구석에 미미한 존재감으로 남아있고 싶다. 먼저 나서서 뭐든지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넌지시 도와주는 사람으로.
그리고 나의 유일한 소망은, 내가 어린이였던 날을 잊지 않는 것이다. 되도록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