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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혜민 Nov 11. 2021

돌봄이 짐이 되지 않는 삶을 원한다

홀로 간병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청년 이야기를 읽고

생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떠올리게 되고, 등 떠밀려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내 이 사연이 가슴에 얹혀 있었다.

우연히 타임라인으로 흘러 들어왔던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시리즈의 첫 글을 읽고 나서,

화가 나서 열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슬퍼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아닌,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철렁했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걸 들켜버린 것 같았다.

운이 좋아서 살았고, 운이 좋아서 누군가를 만났고,

운이 좋아서 구제되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순간순간마다,

내 의지가 아닌 무언가에 마음이 끌려다니며 작은 생채기가 수도 없이 났다.

'만약에 나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사람의 삶이 이런 한 순간 한 순간으로 결정돼도 되나?


그리고 떨어진 심장은 다시 가벼워지지 않았다.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결국 마주해야 한다는 게 무거웠다.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게 된다. 언제가 되든 반드시 찾아올 미래.

그러나 아무도 그 돌봄을 도와주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최선을 다 해 하는 주변인들이 있어도 그렇다.

최선을 다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앞이 캄캄했다.

애간장이 끊어지게 노력을 해도 그걸로 부족할 수 있다는 게.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내게로 쏟아지는 듯, 숨이 막혔다.


그 마음을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날 이후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움직이고 있다.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절실하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날이 왔을 때,

그리고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그 무게가 나와 내 가족을 말려 죽이고 깔려 죽이게 될 게 뻔하다면,

누구도 나이 들고 싶어하지 않고, 아프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불행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아프게 된다는 것.

반드시 찾아올 미래를 이미 절망적으로 맞아야 한다면,

어느 누가 이 사회에서 살고 싶을까.


겨우 그 꼴을 보자고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생일이라서 더, 삶을 직면할 수밖에 없을 때라서 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고통이, 더 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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