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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혜민 Feb 17. 2022

흔들리잖게* 살아가 보자는 결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함께 봅시다

*제목의 의미 : 영화를 보고 온 누구나에게 울림이 있을, 저항가요 '흔들리지 않게'의 가사를 들리는 대로 적었다. (영화 개봉과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도 있다. 영화사 진진 블로그의 소개글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한다.)

파란 하늘 아래 초원에 세 대의 미싱이 있다. 세 명의 여성노동자가 미싱을 돌린다. ⓒ공식 포스터


"노동자" "노조" 등 단어의 명예를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시대다.

가난하고 취약하고 어렸던 여자들의 임금과 배움을 위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싸웠던,

죽을 각오를 하고 창틀에 올라섰으나 붙잡는 손들 덕분에 살아남았던

용감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부끄럽지 않기가 힘들다.


노동교실에 다니던 십대 때의 이숙희님 사진, 그 앞에 선 현재의 이숙희님. ⓒ공식 스틸컷


1977년 9월 9일,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숨구멍이었던 노동교실을 돌려달라는 투쟁이 있었다.

9월 10일까지 방을 빼야 한다기에, 하루 전날인 9월 9일을 결행일로 삼았을 뿐이다.

너무도 당연한 움직임 앞에서 한국 정부의 수준은 어찌나 얕았던가.

처벌 않겠다 해놓고 줄줄이 묶어 유치장에 집어넣은 경찰들,

잡아와 놓고도 죄가 없음을 알아 서로 소곤거리기나 했던 형사들,

공문서를 위조해 기어이 수감한 검찰,

재판정에서 십대 이십대 여성들이 던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도 못했던 판사들.

그리고 그 지겨운, "누가 시켰냐"는 질문들.


스스로의 권리를 위한 움직임들을 모두 곡해하기 바빴던 사회.

그 부당함과 잔인함을 거쳐 살아남아주신, 이 사회를 함께 만들어주신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40년 전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화면에 나란히 비칠 때, 정말 아름다웠다.


스크린에 띄워진 자신의 어린 얼굴을 만져보던 노동자들. ⓒ공식 스틸컷


음악과 촬영과 편집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다큐멘터리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특히 장소 선정과 미술이 참 좋았다.

공장에 갇혀 하루 15시간씩 일할 즈음엔 "꿈에서나 봤던" 파아란 하늘이나

미래를 예감한 듯 "꼭 경포대 가야 돼" 하며 떠났던 강릉 바다,

몇백 번 오르내렸던 먼지 퀴퀴한 상가 복도 등, 

의미 있는 장소들을 영화로 가져온 덕분에 출연자분들의 감정에 더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스크린 속의 그들과 관객석의 나는 함께 훌쩍이고, 또 함께 낄낄거렸다.

이 나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몸을 던졌던 우리의 작은 영웅들을 그렇게 만났다.

그들은 놀랍게도 평범한, 길 위에서 수없이 마주칠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 분들의 눈에,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사회가 창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청계상가에서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의 얼굴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해가 눈부셔 찡그리고 있다.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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