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과 퍼포먼스가 좋았던 노래들
(1) 가사와 메시지가 좋았던 노래들 부터 이어집니다.
- Love Scene - 백현 ; 2021.03.30 발매
2020년에는 백현의 Love Again 을 제일 많이 들었다. 이 노래는 그 노래와 정확히 일직선상에 있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노래다. (원작자가 공인했다) 그런데도 곡의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했던 생각은 “와 이거 진짜 조원선 노래 같다” 라는 생각이었다. 심지어는 비슷한 노래를 찾으려고 조원선 노래를 쭉 들어보기도 했다. (찾지는 못했다) 이렇게 쓸쓸하고 감성적인 노래와 백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게 여전히 놀랍다. 그리고 나는 역시 알앤비가 너무 좋다. 알앤비는 그야말로 도시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얼 악기와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섞여, 도심의 비오는 밤거리로 나를 데려간다. 이토록 가성비 좋은 여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 ASAP - 스테이씨 ; 2021.04.08 발매
숏폼이 10대 문화에 얼만큼까지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사실 ASAP 전까진 그 영향력을 거의 불신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제는 무시할 수 없음을 분명히 느꼈다. 2010년대에 후크송의 효능에 대해 가타부타 논쟁했던 것과 거의 같은 패턴으로, 숏폼에 최적화된 노래들에 대한 논쟁이 오고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입장은 ASAP 전과 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대략 15초 주기로 하이라이트가 돌아오는 이 노래가, 얼마나 경쾌하고 또 즐거운지가 지금의 트렌드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노래라면 어느 플랫폼에서건 히트를 하겠지만, 숏폼에 잘 타겟팅을 한 노래라면 그 히트의 타이밍이나 규모가 더 적절하게 터질 수 있다. 그런데 숏폼을 노린다고 해서 노래가 좋지 못할 이유가 있나? 오히려 전환이 빠르니 더 신나고, 후렴구가 명확하니 더 기억에 잘 남지 않겠나? 바로 ASAP처럼! 그래서 이 노래는, 숏폼이 가진 장점을 곡의 장점으로 잘 반영하여 그 자체로 매력적인 노래가 되었다. 숏폼 자체는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을 반영하여 더 좋은 노래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트렌드다.
- 고래 (Dive Into You), ANL - NCT DREAM ; 2021.05.10 발매
나는 놀랍게도.. 엔시티 드림 컴백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ㅋㅋ 컴백쇼의 고래 무대가 정말 놀랄 노자였다. 언제부터 드림 친구들이 이런 Boyfriend Material 수행에 능숙해진 거지???? 역시 가수는 무대로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와 소품과 가사와 멜로디 모두를 노련하게 컨트롤하는 드림 친구들 덕분에 정말 몇날 며칠 즐거웠다. 그리고 엔시티 앨범이 늘 그렇듯, 컨셉추얼한 타이틀곡 아래 숨겨진 미디엄템포 수록곡들이 너무 좋았다. 그 중에서도 ANL은 기나긴 리뷰 글을 이미 썼을 만큼 내 취향을 저격했는데, 래퍼 멤버들의 역량을 드디어 속 시원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곡이어서 더 마음이 흡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해찬의 보컬 능력에 대해서도 매일 더 감탄하게 되는데, 이 앨범을 기점으로 음역대와 표현력 자체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이로써 해찬은 아마 엔시티 전체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궁금해 (Prod. GRAY) - 쌔끈보이즈 ; 2021.05.28 발매
국힙을 향한 나의 외사랑은, 딩고 프리스타일 채널을 절대 구독하지는 않으면서도 맨날 손수 검색해서 들어가 보는 행위로도 증명되는데... 그 결과로써 몇 년 동안 던밀스와 넉살이 함께하는 딩프의 예능 '궁금한 나라의 넉밀스'를 꾸준히 봤더니 이런 웃기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발빠르게 알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웃기다. 직접 내 입으로 발음하는 것조차 견딜 수 없는 이 그룹의 이름은 정말 킹받지만 그 외의 다른 점들은 다 마음에 든다. 박재범의 보컬은 브루노 마스가 만든 실크소닉 같은 느낌으로 90년대 느끼한 팝을 소환하는 데 성공하고, 넉살의 랩은 정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좋다. 절대 국힙러로 살고 싶진 않지만 이런 노래는 더 많이 듣고 싶다. 그게 국힙러라고? 싫은데....
- GAMBLER - 몬스타엑스 ; 2021.06.01 발매
고백하자면 음원으로는 거의 듣지 않는 노래인데, 아이돌 외모평가의 신기원인 주사위 계산법 (오늘 컨디션이 최고면 6, 안 좋으면 1로 표현) 을 제시한 아이돌등판 컨텐츠와... 외교부 잇츠라이브 밴드 라이브 영상을 낳은 활동이었기 때문에 꼽아봤다. 밴드 라이브 영상을 꼭 봐야한다. 진짜 다들 기절하게 잘한다. 뭐라고 해야 하지, 자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자신감과 팬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몰입력과 연기력이 폭발한다고 해야 하나. 반주가 심플할수록 민망함이 비례해서 커지는데, 너무 잘 하니까 1도 어색하지 않고 그냥 홀려서 봤다. 지금도 아무 맥락 없이 그냥 만족하고 싶을 때면 틀어서 본다. 아 짜릿하다~~~~! (그리고 민혁과 기현 검은색 머리 한 거 정말 예쁘다)
- Alcohol-Free - 트와이스 ; 2021.06.11 발매
2021년 최고의 노래로 꼽고 싶다. 앞으로 영원히 들을 것 같다. 여름에만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분 다운되면 무조건 들을 것 같다. 트와이스 노래는 항상 좋았지만, 2020년에는 좀 애수가 있는 노래들이 좋았다면 Alcohol-Free는 0%의 쓸쓸함도 허용하지 않는, 그야말로 극강의 즐거움만 담고 있는 노래인 점이 좋았다. 가사도 너무 사랑스럽고, 안무도 정말 잘 만들었다. 알콜 없이도 취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은 매일매일, 이 노래가 배경음악이 될 것 같다. 단 하나 걸리는 건 멤버들의 의상이었다. 노출도도 문제지만 너무 불편해 보여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몇년째 지적하는데 몇년째 정말 꾸준히 개선이 없다.
- Ready To Love - 세븐틴 ; 2021.06.18 발매
세븐틴의 빠른 노래들도 좋아하지만 미디움템포 노래들 (울고 싶지 않아,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등) 좋아하는데, 이 노래가 정말 오랜만에 취향에 맞는 미디움템포 노래였다. 역시나 처음엔 심드렁했다가.. 스카잔을 입고 춤을 추는 호시 영상을 보고 완전 꽂혔다! 세븐틴 안무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늘 달리고 있고 ㅋㅋㅋ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전.전.전 느낌인데 역시나 이 곡도 안무가 정말 바빴다. 그럼에도 호시가 내는 약간의 날티와 강약조절이 좋고, 후반부 후렴구에 걸어 나올 때 팔을 살짝 걷는 것 같은, 한 순간 사람들의 주목을 자기에게로 끌어오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 Rock With You - 세븐틴 ; 2021.10.22 발매
Ready to Love 을 일찌감치 마음에 담으면서, 올해 세븐틴의 노래는 이게 최고겠지 생각했는데 맙소사, 늦가을에 이렇게 기분 좋게 배신당할 줄은 몰랐다. 체감상 거의 Ready to Love 다음달에 컴백한 느낌이었는데 ㅋㅋㅋㅋ 이렇게 좋은 퀄리티의 앨범을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단 게 그저 놀라웠다. 일단 이 곡은 뮤비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세븐틴 곡이었다. 멤버 각자의 이미지에 잘 맞는 씬들이 있어서 보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정신없이 사랑에 빠질 때처럼 빠르게 달려가는 속도감이 기분 좋았던 것 같다. 지루해질 만하면 툭 떨어지는 드랍이나 락킹한 애드립 등 재미있는 요소가 나와서 자꾸 들어도 지겹지 않았다. 세븐틴에게 락 무드가 잘 붙는 게 의외면서도 참 잘 됐다 싶었다. 이들이 발굴해내는 청춘의 이미지가 고갈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표현방식의 변주에 있겠구나 싶어서.
- Maniac (Sung By 도영, 해찬) (Prod. 라이언전) - NCT U ; 2021.08.12 발매
라이언전의 지극히 경박하고 얕은 감수성은 여전히 씁쓸한 뒷맛으로 남지만, 솔직히 고상하고 철학적인 사람은 케이팝 곡을 프로듀싱 하면서도 그 조금의 현학적 태도를 버리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경솔함과 경박함이 결국 히트성과 연결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 농담~~^^) 그런 의미에서 그가 엔시티 친구들과 각 잡고 콜라보를 한다길래 어떤 노래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솔직히 진짜 좋았다. 도영 해찬이라는 조합도 좋았고 이들의 까랑한 보컬을 활용하는 방식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작업의 특성상 더 히트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퀄리티가 넘 좋아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았겠다 싶다.
- One Day - 몬스타엑스 ; 2021.09.10 발매
이 노래에 대해서는 배경지식이 1도 없어서 철저히 감상평만 쓸 수 있다. 몬스타엑스에 대해서도 어쩌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멤버 모두의 보컬 실력이 생각보다 좋다는 것이다. 기현이 케이팝의 신이라는 팬덤 내 평가에 대체로는 동의하는 편이며, 아이엠과 형원의 저음 음역대가 정말 매력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팬들이 늘 자랑스러워하는, 주헌의 보컬이 나도 개인적으로 정말 의외이면서도 찐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매력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노래는 그런 각자의 매력을 부각시킨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모를 정도로, 몬스타엑스의 타이틀곡들이 가지고 있던 전형성을 탈피한다. 이것이 해외진출의 장점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한다.
- Siesta - 위키미키 ; 2021.11.18 발매
진짜 잘 만든 케이팝. 위키미키가 그동안 내놓았던 곡들에 비하면 구성이나 사운드가 미니멀한 편인데 (오마이걸 노래 같은 느낌) 이게 되게 신선했다. 뮤비나 자켓도 위키미키의 리얼리스틱한 모습을 담은 느낌. 아마도 COOL 다음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내가 꾸준히 말해온 대로 위키미키는 춤을 잘 추는 그룹인데, 사실 노래도 참 잘하는 친구들이다. 걸그룹들의 연이은 활동중단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부디 이 친구들이 조금만 더 길게 이렇게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하게 된다.
- ELEVEN - 아이브 ; 2021.12.01 발매
사람들이 연말결산 막 하고 있는 시점에 혜성같이 등장해버려서 데뷔 1~2주만에 올해의 신인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올해의 노래로) 꼽히는 일이 심심찮게 보였던, 화제성으로 따지자면 따라올 사람이 없을 대단한 데뷔곡 ㅋㅋㅋ 이 정도의 파괴력을가질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멤버들의 비주얼이 정말 엄청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나는 안유진처럼 쾌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장원영이나 레이가 가진 새침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다들 정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전반에 깔려있는 아프리칸 드럼 사운드 덕분에 레드벨벳 행복이 생각나기도 해서, 데뷔곡으로 참 좋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숏폼에 잘 어울리는 후렴구의 템포 변형도 정말 매력적인 선택이었고.
(3) 장르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노래들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