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노래들
(1) 가사와 메시지가 좋았던 노래들 (2) 곡과 퍼포먼스가 좋았던 노래들 부터 이어집니다.
- CØDE - 샤이니 ; 2021.02.22 발매 (리패키지 2021.04.12 발매)
샤이니의 7번째 정규앨범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폭발하다 못해 흘러넘쳐 넘실대는 에너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리패키지를 더 좋아하는데, 리패키지에 실린 곡들의 속도감이 정말 너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곡을 통틀어서 가장 잘 만든 노래는 역시 CØDE다. Don't Call Me 에서 비장함과 애절함을 보여줬다면, CØDE는 예전의 샤이니가 발표했던 Real, 낯선자 같은 노래를 떠오르게 하는, 몽환과 비일상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보컬을 쓰는 범위와 세기가 인정사정없다는 점에서 정말 속이 시원하다. 컴백 기념 브이라이브에서 키와 민호가 모두 좋아하는 곡으로 꼽은 이유가 분명히 있다. 샤이니의 감성이 빈칸 (Kind) 같은 노래에서 표현된다면, CØDE는 샤이니의 초심을 담고 있다.
- 불어온다 - 하이라이트 ; 2021.05.03 발매
하이라이트가 출연한 제시의 쇼터뷰 영상이 꽤 오랫동안 내 즐겨찾기에 있었다. 이런 표현이 그들에게 모욕적일지도 모르겠지만.. 2010년대에 데뷔한 남자 그룹들이 주는 적당히 자극적인 매력들이 있다. 비속어나 남성성 수행, 위계문화 등에 있어서 훨씬 자유분방한 느낌 말이다. 하이라이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불쾌하지 않게 웃기고 재미있는 외향인 남자들이었고, 요즈음의 극도로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남자그룹들이 주지 못하는 통쾌함을 준다. 나 역시 익숙한 맛을 만나니까 얼마나 즐겁던지... 그들의 ‘여동생 취급’에 기꺼이 장단을 맞춰주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ㅋㅋ 이게 내 입장에선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ㅋㅋㅋㅋ 그런 매력이 음악에 조금만 반영되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복귀 후 첫 앨범이니 노래는 약간은 밋밋하게 가는 게 안정적이었겠다 싶다. 불어온다의 시원한 서정성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나는 수록곡 Surf나 WAVE가 더 좋았던 것 같긴 하다.
- Next Level - 에스파 ; 2021.05.17 발매
Next Level이 케이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건 분명하다. 화제성 면에서, 도전정신 면에서, 그리고 기록의 면에서 모두 괄목할 만했던 중요한 곡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발매 직후부터 열심히 들었던 건 아닌데, 이 곡의 어떤 특징도 내게 특별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영진의 편곡 스타일이든, 독특한 전조든, 베이스 사운드든, 사이버틱한 세계관이든, 에스엠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미 선보였던 것들이기 때문에. 하지만 대중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나 보다. 그걸 발견한 게 오히려 내게는 큰 수확이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흥미로운지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워낙 관심의 중심에 있으니 여름 이후부터 자주 듣게 되었고, 처음에 심드렁했던 게 거짓말처럼 그 뒤로는 정말 많이 들었다. 좋은 노래니까 앞으로도 많이 들리고 많이 불리겠지. 다행인 일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창작자들이 새로움을 추구함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 If I could tell you (Feat. 태연) - 태민 ; 2021.05.18 발매
태민이 군대에 있는데 케이팝 시장이 계속 돌아간다니 나는 그저 의아할 뿐. ㅋㅋㅋ 농담이지만, 실제로 태민의 입대소식을 접하고 며칠 동안 기분이 이상했던 건 사실이다. 십대 중반부터 왕성한 활동으로 케이팝의 현주소를 몸소 기록해왔던 황태자가... 벌써 서른이라니? 그래서 입대 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Advice 앨범을 정말 발매 되자마자 다급한 마음으로 찾아 들었는데, 사실 타이틀곡보다는 이 노래가 더 귀에 들어왔다. 태민의 비장미 넘치는 타이틀곡은 전체적으로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 같아 보여서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데, 이 노래만큼은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보컬 능력으로는 당연히 태연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지만, 나름의 이별 감성을 표현하는 태민의 감성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의 태민을 결산하는 느낌보다는 앞으로의 태민을 예견하는 노래 같아서 좋았나보다.
- 그럴때마다 (Be There For You) - 조이 ; 2021.05.31 발매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피톤치드가 뇌에서 분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당연히 그건 조이다. 이름부터가 조이, 상징 색깔은 초록색, 상징 과일은 풋사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정말 너무나 행복해진다. 그런 조이가 리메이크 앨범을 냈는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나. 내가 예전부터 꾸준히 사랑해왔던, 박문치가 편곡하고 서울의 미세먼지를 배경으로 뮤비를 찍은 바라봐줘요 커버를 떠오르게 하는, 영리하고도 흐뭇한 선택이었다. 모든 트랙이 정말 잘 짜여있고 술술 흘러가는데, 그 마지막 곡으로 그럴때마다 를 넣었다는 점이 특히 천재적이다.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자꾸, 없는 십대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버린다. 나 90년대에 10대 아니었는데 ㅠㅠ 자꾸 마이마이 들고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시내버스에 올라타서 가로수 사이를 지나는 상상이 되고 그런다. 정말 곤란하고 너무 재미있다.
- 해야 해 - 2PM ; 2021.06.28 발매
고백하건대 투피엠의 준호와 우영을 좋아해서, 그들에 대한 다소 과하다 싶은 티엠아이도 좀 알고 있는 편인데 그래도 준호가 멤버 중 인기가 제일 많아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ㅋㅋㅋ 우영이 말했듯 준호가 덕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게으르지 않게 늘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고 그 열매를 가져갈 때가 오나 보다. 그러니 당연히 컴백 타이틀곡의 하이라이트는 준호가 가져가야지. 노력 면에서나 매력 면에서나 준호가 적격이니까. 준호가 팔을 걷으며 걸어 나오는 3초가 이 노래의 존재이유가 된대도 아무도 반박할 수 없지 않겠어. 해야 해가 아주 엄청난 곡은 아니지만 그래도 준호의 덕과 우영의 끼가 잘 반영된 좋은 곡이라서 어쨌든 중박 이상은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영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돋보일 수 있는 노래가 좋다. 헤어를 조금 더 신경써 줬으면 무대도 더 재밌게 봤을 텐데.... 그 아쉬움은 다음 앨범으로 남겨본다.
- LO$ER=LO♡ER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2021.08.17 발매
투바투는 락을 해야하는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락커인데 춤을 너무 잘 추는 거지 ㅎ 왜냐면 이런 노래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아이돌은 절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빅히트의 ‘흔들리는 청춘 프로듀싱’을 유치하거나 느끼하지 않게 잘 받아내고 있는 게 정말 기특하다. 방탄은 힙합을 접목하며 좋은 결과물을 내 왔다면 투바투는 락을 접목하여 또 하나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며 느낀 건데 아무래도 범규와 연준의 비주얼 덕분에 더 설득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ㅋㅋㅋㅋ 다음 앨범이 기대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투바투는 적어도 어떤 기대감 조성은 성공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 BAD LOVE - 키 ; 2021.09.27 발매
뻔한 그림을 제시할 생각이었다면 키가 그렇게 솔로에 공을 들이지 않았겠지. 이 정도는 되어야 키의 디스코그라피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록이 다 죽은 2020년대에 어떻게든 80년대의 글램록을 소환해야만 성이 풀리는, 탐미적인 현실주의자의 결과물이다. 구현 가능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소환이 필요한가가 중요할 뿐. 확실히 지금 시대에는 이런 자기파괴적 멜로가 필요했고, 키의 모든 퍼포먼스와 자기 연출이 정말 잘 맞아떨어져서 멋진 결과물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록곡들이 조금만 받쳐줬더라면 주저없이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겠지만 약간은 아쉽다. 그러나 타이틀곡 뮤비와 무대만으로도 충분히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퀄리티를 선보였다. 키는 무엇을 하더라도 완벽히 이해한 상태에서 선보인다. 그가 글램록을, MTV 컬쳐를, B급 SF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만큼의 결과물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정신에 다른 스탭들도 프로정신으로 응답했다. 대표적으로 켄지의 가사가 그러하다. 본 조비가 살아있었다면 BAD LOVE를 분명 좋게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근사하다.
- Favorite (Vampire) - NCT 127 ; 2021.10.25 발매
간만에 골때리는 곡이라서... 웃겨서 넣었다. 이 노래는 나에게 정말 진하게... 신화를 연상하게 하는 노래인데, 물론 신화 곡 중에 이런 곡이 딱 맞게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노래가 가진... 과장된 감정이 신화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뿐. 엔시티 노래 중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사랑 노래가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선택을 한 에스엠이 의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잘 한 선택이었던 것이, 127 멤버들이 나이대로나 연차로나 비주얼로나 팬덤 연령층의 비율로나 전반적으로 남성성 어필을 하기 괜찮은 컨디션으로 접어들었다는 점과, 나름대로 대중성과 타협한 쉬운 후렴과 멜로디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이 곡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랩 파트가 너무 복잡하게 들어가서 아직 진입장벽이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는 엔시티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흥미로웠달까. 그렇지만 여전히 너무 웃기다 ㅋㅋ
- XOXO - 전소미 ; 2021.10.29 발매
소미에게 좋은 곡이 주어지지 않아서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물론 그건 소미가 가진 스타성에 비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연예계 데뷔가 너무 일렀고 이미지 소비도 많이 된 상황이라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런데 본인은 얼마나 그랬겠어. 그런데 이 곡은 정말 잘 어울리고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아서 다행이었다. 하이틴 감성이라고들 불리는.. 적당히 과잉된 감정이나 과격한 가사, 빈티지한 의상 등이 소미와 잘 어울렸다. 그리고 숏폼에 잘 맞는 곡 구성도 좋았고. 이 노래 이후로 소미가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면 정말 좋겠다.
- 잘 가라니 - 2AM ; 2021.11.01 발매
최근 가요계에 남자 보컬 그룹이 얼마나 기근이었는지 예능에서 그룹을 구성해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ㅠㅠ 타이밍 좋게 2AM이 컴백했다. 진짜 귀신같은 타이밍이었고, 본인들도 각자의 노련함과 실력으로 그 타이밍을 잘 잡았다. 유튜브와 예능에 그렇게 많이 노출이 되었는데 지겹다는 느낌이 없고, 늘 반갑기만 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또 노래도 잘 가지고 나왔으니 다들 반가워했던 걸텐데, 박진영과 방시혁이 만든 두 개의 타이틀곡 다 중간 이상은 가는 완결성 있는 곡들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잘 가라니가 더 좋았다. 네 명의 목소리가 잘 살았고, 감성도 이전 2AM 느낌이 있었기 때문. 한동안 정말 이들 덕분에 발라드를 많이 들었던 거 같다.ㅎㅎ
- 별의 조각 - 윤하 ; 2021.11.16 발매
윤하 님을 케이팝 결산에 포함시킴에 약간의 찔림이 있지만... 팝이니까 염치불고하고 끼워넣어본다. 나는 윤하가 부른 OST 빛이 되어줄게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노래를 OST가 아닌 버전으로 가다듬으면 아마 이 노래가 될 것이다. 이 노래가 가진 스케일이나 우주적 메시지는 마치 이승환의 앨범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만큼의 저력을 가지고 있는 가수가 아직 음악을 사랑한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윤하가 그저 고맙고 아름다워서 눈물을 삼키며 들었다.
- Round&Round, Universe - NCT U ; 2021.12.14 발매
엔시티 단체 앨범이 올해에도 찾아왔다..... 화제성을 모으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급하게 활동을 몰아서 해야 하다 보니 나도 첫인상을 잘 기록해두기가 힘들었는데, 대중들은 얼마나 낯설까 싶다. 아무래도 한두 해 하고 말 프로젝트가 아닌 듯 싶으니 2022에는 다들 조금은 더 익숙해져 있길 기대해본다. 이번 앨범에서는 당연히 Universe 만한 트랙이 없었는데, 도전정신 면에서도 세계관 면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단 인상이 팍팍 느껴졌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안무에 정성을 들인 티가 났다는 건데, 디테일이 복잡하고 동선 변화가 많아서 연말 무대처럼 큰 무대에서 보기보다는 음방 무대에서 더 길게 보고 싶었다. 쇼타로 직캠 조횟수가 엄청나게 올랐던 게 흐뭇했던 기억으로 남고, 우리 둘의 아카펠라가 아름다웠다는 가사 속 화자의 로맨틱함이 가슴 찡하게 좋았다. 특히 "환희 속의 하이파이브" 부분의 안무도 표정도 멜로디도 좋아하는 편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밤하늘 아래를 질주하는 (왠지 운동부 출신일 듯한) 순정만화 주인공이 떠오른다. 이런 캐릭터가 명확하게 그려지는 케이팝, 참 즐겁지 않나. 수록곡 중에서는 Round&Round 가 제일 좋았다. 나는 엔시티가 이런 식의 절규하는 알앤비 발라드를 할 때 참 좋더라... (Back 2 U, Sun&Moon 류) 샤오쥔-태일 음색 조합이 독특한데... 거기에 재현, 텐, 성찬의 중음역대가 너무 신기하게 좋고... 해찬은 혼자 다른 세상에 있다....(좋은 의미) 다른 곡들도 좋지만 발매 후에도 제일 많이 듣는 노래는 이거였던 것 같다.
여기 있는 곡들 말고도 케이팝으로 묶이지 않는 노래들도 다양하게 내 플레이리스트를 수놓았는데, 그러고 보면 2021년도에는 (그 이전에 이어서) 최대한 다양한 노래들을 들으려고 노력했던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힙합이나 록에 대한 관심도 더 커져서, 한국 힙합과 록 아티스트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아이돌 시장이 과포화 상태가 되면서 기존의 틀로는 가둘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장르에 대한 공부 없이는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없겠단 위기감도 든다. 이 고민과 연계하여 유튜브 채널도 점점 더 다양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2021년도에는 팬 활동에 대한 내 태도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일례로, 예전에는 응원하는 그룹의 신곡을 잘 챙겨듣지 못하면 모종의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는데, 21년도에는 그런 식의 의무감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리뷰 글을 뜸하게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과몰입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가 흐려진다고 본다. 어떠한 행동이든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아픈 일들이 생긴다. 부디 다른 젊은 여성들의 마음도, 스스로의 보호 아래에서 아프지 않게 지켜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