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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Aug 28. 2023

1983년 8월 7일

“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 가~~”

 

    

“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낭만의 계절...”     


     

유행가 가사가 아니래도 여름은 젊은 피를 더욱 뜨겁게 했다.  소나무가 그늘 드리운 한적한 계곡을 우리의 노래가 점령했다.  이웃한 텐트에서 어른들이 보내는 눈총을 젊다는 패기로 무시하고 우리는 그저 소리 높여 합창하는 것이 지금 할 일의 전부인 양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벌개 진 얼굴로 통기타를 두드리는 YB.  유일하게 기타를 만질 줄 아는 녀석 덕분에 우리 흥이 쉽게 달아올랐다.  

        


“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     

“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우리 시대 포크송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시절 낭만이었으니 그날 목이 쉬도록 반복한 노래는 아직도 내 귀에 남아 있는 금빛 청춘의 랩소디이다. 기타를 내려놓는 YB의 손끝이 붉었다.








잠시 그가 쉬는 시간 드디어 내가 준비한 카세트 라디오가 제 역할을 시작할 때가 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 가~~”         

      


스물 두 개 눈동자가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헉, 아빠의 애창곡이었다.  잠시의 어리둥절은 곧 웃음 쓰나미 되어 우리를 배꼽 잡고 구르게 했다.  말똥구리 보고도 웃는다는 열아홉 살 친구들.  눈물 흘리는 친구들 속에 나도 있었다.  내 취향이 뽕짝이었냐며 숨넘어갈 듯 놀리는 친구의 빈정거림이 싫지 않았다.  이후 금순이가 내 별명이 되었음은 따로 말 안 해도 이해될 듯.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하는 건지 카세트 라디오 탈취에만 신경이 곤두선 내가 따로 노래 테이프를 챙기지 않았던 그날의 참사는 나의 어리바리를 대변하는 충분한 에피소드였다.  그래도 사람 숫자가 많다 보니 주섬주섬 제 가방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최신 팝송, 최신가요.     

공부하는 중간중간 레시바(그땐 이어폰을 그렇게 불렀다)를 안 보이게 끼우고 몰래 듣는 ‘별이 빛나는 밤에’는 찌든 고3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형편이 좋은 집 아이들은 마이마이라는 휴대용 카세트를 들고 다녔고 대부분 아이들은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가졌다. 지금처럼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을 그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끔은 레트로 한 감성을 끌어내 글감으로 쓰는 걸 보면 빛바랜 그 시절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지 싶다.   

       


Billie Jean, 친구의 가방에서 탈출한 그 시절 최고의 팝송. 우리는 약속한 듯 일어나 마이클 잭슨의 moonwalk를 시작했다. 지금은 몸치 중의 몸치로 꼽히는 나 역시 믿거나 말거나 그 시절에는 댄서였다. What a feeling, Maniac 지금도 그리운 그때 그 노래들이 퇴색한 파노라마로 눈앞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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