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 Aug 29. 2023

1983년 8월 7일

“ 여전하네. 이금순.”

       


 지난해 여름 길었던 코로나 가 한풀 꺾이며 미루고 미루었던
국민학교 동창들과의 야유회가 있었다.    



몇 년 전 래프팅을 가기로 했으나 근무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내가 래프팅을 노래했던 탓인지 한탄강 래프팅이 다시 공지되었고 일찌감치 근무를 조정한 나도 참가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강물이 꽤 불어 있었다. 사두고 한 번도 입지 안았던 래시가드를 챙겼다. 이 나이에 짧은 옷을 입을 수 있을까. 매번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옷이 부담스러웠지만 용기 내보기로 했다. 마침 함께 간 MM도 탈의실에서 래시가드 입는 것을 보며 나도 안심되었다. 늙어가도 여자친구들 맨 허벅지를 보는 게 부끄러웠는지 남자 동창들이 눈 둘 곳을 찾아 흘깃거리는 모습에 슬그머니 짓궂은 미소가 피었다.    








영차 영차 교관의 지휘에 따라 구호를 외치며 힘찬 패들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수상 레포츠 삼매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간쯤 위치에 쉴 수 있는 작은 섬. 사진 spot이라며 교관이 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은 열아홉 그때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는데 HS가 다가왔다.     



“ 로사, 나 할 말 있어.”     



그는 국민학교 졸업 이후에도 대학까지 계속 친하게 지낸 통학생 친구였다. 점잖고 내성적이라 별 표현이 없던 녀석이 지점장이 되더니 제법 유들유들 해졌다.      


    

“ J 면 생각나?”

“ 응?”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강물에 내동댕이쳤다. 안 그래도 물놀이를 무서워하는 나인데 이 녀석 감히 나를 던지다니. “죽을래~~”를 외치며 뜨거운 태양 아래서 죽어라 쫓아다녔다.   


            






그해 여름에도 그랬다.     

노래하던 베짱이들이 힘센 태양에 지쳐 갈 무렵 한 녀석이 웃통을 훌떡 벗더니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뒤질 세라 남은 녀석들도 한달음에 물속으로 풍덩. 

난감 한건 여자 친구들이었다.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같이 벗고 들어갈 수도 없고 물놀이를 계획해서 따로 옷을 챙겨 온 것도 아니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 쟤 들은 시원하겠다.”      



그러더니 씩씩한 JS가 샌들도 벗지 않고 그대로 풍덩. 연달아 나머지 네 여자친구들도 따라서 뛰어가는 모습이 피리 부는 사나이 따라가는 쥐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뭔가 중요한 일을 앞에 두면 아직 때가 아닌데도 마법에 걸리는 나. 그날도 그랬다.     

물놀이하는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만 보는데 TW와 HS 둘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 보였다. 물먹으러 오나 싶어 주전자에서 물 두 잔 따르는데. 내게로 돌진한 녀석 둘이 양쪽 겨드랑이에 팔을 끼우더니 곧장 물로 향했다.          


“ 으악, 살려줘~~~”     



차갑다 느끼는 순간 그 둘을 패주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눈물이 쏟아졌다. 놀란 여자친구들이 다가오니 더욱 서글펐다. 여자친구들은 이내 나의 눈물을 이해했다. 대신 응징하겠다고 달아나는 두 녀석을 끝끝내 좇아가 낚아채고는 그대로 물속에 고꾸라뜨리고 말았다. 때로는 여자 힘이 더 세지는 건지 모른 척 당해 주는 건지 결국 이 모습을 보는 나도 웃음을 터뜨리고 모두가 물싸움을 즐기며 힘센 태양을 서쪽으로 밀어냈다.        

       

지난여름 달리던 속도를 줄여 내 손에 잡혀 준 HS가 열아홉 때 표정으로 말했다.   


  

“ 여전하네. 이금순.”     



1983년 그해 여름을 기억해 낸 태양이 우리를 따라 웃었다.           

작가의 이전글 1983년 8월 7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