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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Aug 30. 2023

1983년 8월 7일

아빠, 아셨어요? 모르셨어요?


시골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에는 우리 일행이 전부였다.



전세 낸 버스 뒤쪽에 몰려 앉은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재잘거리며 장난과 웃음으로 그 시간을 채우려 했다. 언제 다시 갖게 될지 모르는 오늘 행복했던 순간을 한 조각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두의  같은 마음. 그러나 아침과는 다른 느낌, 설렘이 지나간 자리에 머무는 아쉬움이 거기 버스 뒤쪽을 맴맴 돌았다.

아침이면 다시 만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무렇지 않은 듯 골목길 지나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 다녀왔습니다.”         


      

차마 학교라는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이유 모를 긴장감. 카세트라디오를 제자리에 두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안방을 슬쩍 보는데 엄마, 아빠가 안 계셨다. 다행이다. 살그머니 문 열고 원래 있던 자리에 카세트를 놓으며 완전범죄를 상상하는 나에게 들리는 목소리.       


   

“ 누나 어디 갔었어?”

“ 어~~.”            


   

거짓말은 못하겠고 그렇게 어물어물하는 사이 동생이 말을 이어갔다.   


            

“ 누나 없어졌다고 엄마가 막 울고 난리 났었어. 지금도 찾으러 나가셨다고.”

“ 누나 학…”

“ 아빠가 학교에 전화했는데 누나 학교에 안 왔다 고 했다니까.”     


          

제대로 사고가 터졌다. 나는 그저 방학 중에 딱 하루 그것도 일요일에 잠시 친구들이랑 놀고 온 것뿐인데 그걸 부모님이 어찌 아셨을까. 학교에 전화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기다려도 부모님이 들어오지 않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밤길을 천천히 걸어 내가 항상 내리는 버스정류소 방향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시절 거의 모든 밤 엄마가 마중 나왔던 길. 반대로 걷는 기분이 낯설었다. 내가 보던 방향과 정반대의 길.          

‘엄마는 이런 밤길을 걸어 나를 마중 나왔네.’라는 생각에 갑자기 코끝이 찡했다. 


가로등 옆 버스 정류장. 서성이는 아빠와 쪼그려 앉은 엄마. 아빠 발밑에 수북한 담배꽁초를 마주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다. 부모의 걱정을 염려하기보다 야단 들을 생각이 먼저였기에 선뜻 부르지 못하고 섰다. 그런 나를 아빠가 먼저 보고 뛰기 시작했고 한발 늦게 엄마가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았다.    


           

“ 괜찮은 거야, 다친 데는 없고, 어디 갔었어?”

“ 죄송해요. 그런데 학교에 전화는 왜 하셨어요?”

“ 공습경보 못 들었어?”

“ 네?”           


    

대답은 없이 모두가 질문만 하고 있었다.              



1983년 8월 7일 중국 인민 해방군 공군 소속 손천근 조종사가 망명을 시도했던 그날 대한민국에는 실제상황 공습경보가 울렸고 학교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학교에 전화한 아빠는 딸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오후 내내 딸을 찾으러 다녔다고.          

나는 태어나서 딱 한 번 일탈 한 그날 하필 공습경보가 울려서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든 딸 된 것이 억울하다고. 그렇게 서로의 말을 하느라 밤 깊은 것을 몰랐다.    



      





그날 아직까지도 비밀로 남은 한 가지, 카세트라디오가 출타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알고도 말 안 하신 건지 아니면 그조차 모르셨는지. 그때는 어려서 감히 물을 엄두도 못 냈는데 지금은 궁금하다.        


아빠, 아셨어요? 모르셨어요?         





                       

epilogue          



“금순아 오늘이 TW이 기일이야. 벌써 이십 년이 흘렀네. 그 자식 잘 있겠지.”     


사십 년 전 그때 우리가 이십 년 후 다시 만날 곳이 하필 장례식장일 줄 그해 여름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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