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 Aug 28. 2023

1983년 8월 7일

" 라면 먹자 "


         

‘바캉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국민학교 6학년 여름이었다.  

 

   

“방학 동안 가족들이랑 바캉스 다녀왔다.”

“바캉스? 어느 나라지? 유럽 어딘가?”    

 

바캉스가 궁금한 나는 사회과 부도에서 바캉스라는 나라와 도시를 찾아봤으나 헛수고였다. 다시 묻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되묻지 않았던 나. 그 여름 TV프로그램에서 다시 바캉스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휴가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알아냈다. 형편이 어려웠던 나의 유년 시절 우리의 바캉스는 개울가에 밥솥 걸어놓고 장작불 때 가며 밥 한 끼 해 먹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몇 해 전 TV 드라마(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의 소풍을 묘사했던 바로 그 장면이 내 기억 속 휴가의 전부였다.     








J 면에는 제법 큰 물 흐르는 넓은 계곡이 있어 더위를 피해 나온 객들이 좋아하는 곳이었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친구들 중 몇 명은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간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들 덕분에 인적이 드문 곳에 돗자리를 펴고 새벽부터 놀란 종아리 주무르며 위로할 수 있었다. 일찍 설친 덕분에 아직은 더위도 무섭지 않았다. 아침을 채우지 못한 친구들에게 나누어진 식빵 한 조각이 반가웠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했다. 넓게 펼친 돗자리에 벌렁 누운 우리는 일탈의 자유를 만끽했다.     

우리 일행은 태어나서부터 이웃이었던 친구에서부터 고등학교 입학 후 알게 된 친구까지 다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내가 친구 역사로는 가장 짧았다. 열두 명 중 열 명은 같은 국민학교 동창이었고 나와 HS만 그들과 학교가 달랐다. 중학교로는 여섯이 남자 중학교 동창이고 또 다른 여섯이 여자 중학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는 모두 S 시로 진학하여 여섯 개 학교에 두 명씩 운명처럼 배정되었다. 한 군데 학교를 빼고 나머지 다섯 군데 학교의 버스 노선이 같았다. 학교 이외에 놀이터가 없던 그때는 버스로 통학하는 시간이 어쩌면 유희의 시간이었다. 우리 역시 그 시간을 통해 서로를 더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SW고 친구들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일삼아 와서 우리와 합류하는 통학생들의 찐 우정. 그 삼 년 차에 벌어진 오늘의 일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놀지 각자 생각하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속담이 머리를 스쳤다. 놀아 본 적 없는 우리가 스스로 놀 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시간 새로운 숙제를 떠안은 묘한 부담이 우리 침묵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라면 먹자



고요를 깨는 한마디에 모두가 꿈에서 깨어난 듯 빠르게 움직이며 첫 과제 도전을 시작했다. 버너와 코펠을 준비한 SS가 능숙한 솜씨로 불씨를 살렸다. 보이스카우트 경력 6년 차인 그의 지시에 따라 물 떠 나르고 김치 꺼내 소박한 상 차린 후 젓가락 한 개씩 나눠 가졌다. 목표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일탈의 에너지원 축적을 기다리는 하이에나. 보글보글 두 개 냄비에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보며 스물네 개 눈동자가 빛났다. 라면이 이렇게 맛난 줄 왜 몰랐을까. 허겁지겁 휘몰아치는 젓가락질에 웃음과 탄성이 계곡을 따라 흘렀다.   

작가의 이전글 1983년 8월 7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