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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Sep 08. 2023

“엄마 싫어요”

남은 엄마의 봄에는 아픈 시간이 잊히길

금년 봄 수연이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회색 주름 스커트에 와인색 스웨터 원복이 백설 공주처럼 예쁜 수연에게 잘 어울렸다. 연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는 막냇동생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SNS에 온통 수연의 등원 길에서부터 하원까지 모든 일상을 리포터처럼 생중계하고 있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그가 수연이 나이 무렵에 겪었던 슬픈 추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저릿하다.    

 

  나와 열한 살 차이가 나는 막냇동생이 엄마 태중에 있을 때 입덧부터 그의 출생 그리고 성장과정을 기억하는 나에게 막냇동생은 때로 아들 같은 느낌이 있다. 웃는 모습이 예뻐서 더욱 막내로서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그때는 가정 형편이 좀 나아진 때였다. 시내에 집을 새로 짓고 이사해서 완구점을 운영하던 엄마 덕분에 내가 그 나이 때와는 사뭇 형편이 달랐다. 냉장고도 들어왔고 컬러 TV도 생겼다. 일명 백색가전의 전성시대에 편입한 우리는 곧 마이카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막내는 우리와는 다르게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먼저 개봉해서 제 것으로 삼았고 동네 구멍가게에도 맘대로 드나들며 제집처럼 군것질을 하는 특권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자랄 때처럼 혼나지 않고 모두가 예뻐할 수밖에 없던 막내.     



막내가 유치원 갈 나이가 됐다. 

엄마는 당연히 막내의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얼어 죽을, 유치원은 무슨. 언제부터 밥 굶지 않았다고 남들 따라서할 거 다 하려고 하는데? 남들 장에 간다고 오줌장군 지고 따라간다는 말 알아 몰러?”   

  

아버지의 반대는 완강했다. 엄마의 어떤 설득과 회유도 통하지 않았다. 당신이 못 배우고 산 세월이 원이 되어 자식이라도 공부시키겠다는 엄마와 분수껏 살라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언제나 집안의 공기를 탁하게 했다. 승자는 변함없이 아버지였다. 이번에는 마지막이라서 지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야심 찬 반격은 무참히 밟혀 결국 멍 자국으로 남았고 완패로 끝났다. 아직 아무런 힘을 보탤 수 없는 나는 엄마의 눈물에 동참하는 것으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엄마 싫어요.”

  “빨리 벗고 이거 입어.”

  “창피하단 말이에요.”

  “얘가 왜 말을 안 들어. 얼른 입고 돌려줘야 한다고.”

  “그럼 딱 한 장만 찍어요.”     



엄마는 옆집 찬우의 유치원복을 빌려와서 막내에게 입히고 결국 원하던 사진 한 장을 찍고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낡은 앨범에 그날의 증거처럼 사진 한 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막내의 예쁜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어렸지만 남의 옷을 빌려 입고 사진 한 장을 찍어야 하는 막내가 엄마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싫다는 막내를 이해하지만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남의 것을 빌려서라도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이 이해충돌을 일으킨 사건은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아픈 추억이 되고 말았다.     


수연의 유치원복을 보는 엄마는 손녀의 예쁜 모습 보다 막내아들의 그날을 먼저 기억하며 눈물을 보였다. 괜한 짓을 해서 어린 막내아들한테 슬픈 기억을 남겼다는 자책이 사십 년을 훌쩍 지낸 지금도 엄마 가슴에 남아 있어 봄이면 상처를 헤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막냇동생이 저토록 기뻐하는 것은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가지 않는 백화점에 들러 수연에게 줄 입학 선물을 준비했다.  “고모 고맙습니다.”라고 배꼽 인사하는 조카를 보며 ‘이 아이는 모르겠지, 왜 어른들이 수연의 유치원 입학에 그토록 기뻐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시절 엄마는 그렇게 슬픈 봄을 맞아야 했고 팔순 되는 지금까지 봄마다 아파하고 있다. 남은 엄마의 봄에는 아픈 시간이 잊히고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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