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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Sep 08. 2023

오뚝이공주

사랑받고 자란 어릴 적 내 이름은 공주랍니다.


사람들은 나를 ‘공주’라고 불렀다.

엄마의 설명으로는 오뚝이라는 말이 생략된 공주라고 했다.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엄마가 부르면 한 번에 ‘네’ 하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예쁜 짓 하는 딸이라는 뜻의 애칭이라고.  동네 사람이 그렇게 불러서 학교 가기 전까지 나는 공주가 내 진짜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아무튼 사랑받고 자란 것만은 틀림없다. 


그 시절 대부분이 어려운 살림을 했듯 우리 역시 그러했지만 솜씨 좋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난 겉으로는 꽤 세련된 시골 아이였다. 늘 반짝이는 구두를 신었고 엄마의 재봉틀이 몇 시간 움직이면 정장에 가까운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도시락의 모양새도 남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부자가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피아노학원을 부유한 아이들만 다녔었다. 부러웠지만 난 한 번도 엄마를 조르지 않았다. 대신 학교에서 따로 돈들이지 않고 진행하는 행사들에는 빠짐없이 참석해서 대표선수로서의 두각을 나타냈다. 어린 맘에도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부분이 글짓기였고 웅변과 미술, 계주의 스타트주자로까지 나섰던 것을 보면 나의 욕심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국민학교 시절 나는 엄마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는 착한 딸이었다.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저녁 밥상머리에서 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방과 후 다녀왔던 친구 집 얘기를 하다가 그 친구의 피아노, 공부방, 책장…. 정확히 책장에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는데 도저히 수습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무슨 배짱이 생겼는지 무서운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엉엉 소리 내어 계속 울었다.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라서 가족들이 ‘얼음’이 되어버렸다.  보통은 동생들 중 누가 징징대면 아빠의 밥상스매싱이 이어지는데 이날은 어쩐 일인지 아버지도 쳐다 만 보고 계셨다. 눈치 빠른 엄마의 분위기 전환으로 어찌어찌 상황은 넘어갔다.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질 않았다. 엄마가 다정하게 나를 토닥이며 이유를 물어보셨다.



“ 나도 잘 모르겠어요. 울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그냥 눈물이 막 났어요.  친구 집에 갔는데 세계문학전집이 책장 가득 있는 걸 보니까 좀 부러웠어요.”



2학년 1학기에  대도시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 오니 제일 아쉬운 점이 도서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있기는 한데 1년이 지나니까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로 모든 책의 대출카드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고 책을 사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조르지도 못했는데 친구 집에 전시된 화려한 책들에게 완전히 맘을 뺏겨 버린 것이었다.


며칠 후 우리 집 툇마루에 번쩍번쩍하게 빛나는 금성출판사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50권이 책꽂이와 세트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난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울다가 잠든 그날 부모님은 한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그리고 평생 지켜온 ‘굶을 지언 정 외상은 안 한다.’는 지론을 깨고 20장의 지로용지와 함께 책을 받아 오셨다고 들었다. 


단칸방에 책장들일 공간조차 없어서 툇마루에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 집 보물 1호가 된 책들로 인해 나부터 아래 두 동생 그리고 그 후 2년이 지나 태어난 막내 동생까지 모두 전집을 읽었고 우리가 다 커서는 이모네 동생들에게로 넘어가 읽혔으니 그 책들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내가 아이가 생겼을 때 그 기억이 새로워서 프뢰벨의 영유아용 전집이란 걸 샀던 기억이 있다. 책이라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신기하게 아이가 잘 가지고 놀았다. 그때는 엄마들이 유아용 전집들을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입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난 그 일곱 권짜리 한 세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취향이 달랐다. 옛날 내 생각이 나서 한풀이라도 하듯 방안 가득 책으로 도배하고 싶었는데…. 대신 우리는 잘 만들어진 공공도서관을 놀이터처럼 이용했고 대형 서점에서는 신간을 공짜로 보는 특권을 누리며 우리만의 독서 배를 불려 갔다. 


언젠가 내게도 손주가 생기면. 책 읽는 손주와 할머니의 정다운 그림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그 녀석에게는 원 없이 책 선물을 해줄 수 있으려나….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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