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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Sep 15. 2023

그거?

이가네  패스워드를 찾아라


“ 엄마가 그거 했다.”

“ 할머니 그거 하셨어요?”

“ 그거 아직 남았나?”


추석처럼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유난히 가족들 입에서 그거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거시기가 거시기하면 거시기한다'는 영화대사처럼  우리 가족에게는 '그거'라면 모두 아는 음식이 있다.


뭘까?


엄마가 만드는 우리 집 특별한 간식의 이름이 ‘그거’이다.


처음 그 음식이 우리 집에 등장한 것은 거의 사십 년 전쯤 어느 날이었다. 처음으로 예비사위를 초대하는 잔치 상에 항상 그렇듯이 엄마의 시그니쳐 음식들이 한상 가득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돋보이는 음식이 하나 있었다. 본 적도 없거니와 맛 또한 기막히게 좋았던 그 음식에 모든 가족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당연히 처음 맛본 그 음식의 이름이 궁금했다.


“ 뭐가 이렇게 맛있고 예뻐요? 이 음식은 이름이 모예요? ”


식구들 마다 한 마디씩 궁금함을 표현했는데 정작 답을 해야 하는 엄마는 잠자코 계셨다.


“...... ”

“ 이름을 모르겠어. 그냥 남은 재료가 있길래 이래저래 조물조물 만들었을 뿐인데. ”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맛있는 음식. 우리는 일단 주재료가 가래떡이고 잡채만큼이나 맛있으니 '떡잡채'라 부르자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우리는 그 맛난 음식을 떡잡채라고 부르며 먹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진짜 떡 잡채라는 요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실제 떡 잡채 보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훨씬 맛나다는 의견이 모이자 마침내 이 음식에 이름을 붙여보자고 가족 공모전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온 가족이 메모지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스무 명 남짓, 참가한 식구가 많다 보니 흡사 백일장을 열은 듯했다. 주어진 시간은 삼십 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각자의 진지폼으로 끙끙대며 창작의 고통을 즐기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마침내 예정된 시간이 모두 끝나고 한 장씩 발표를 시작했다. 예측했던 대로 ‘이가네 떡잡채’가 다수 나왔다. ‘떡과 불고기 야채와 계란의 환상적인 맛’ 줄여서 ‘떡맛’이라는 이름도 나왔다. 이외 다수의 주재료들을 언급하며 나열한 여러 이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반짝-빛나는 이름이 보였다.


‘그거’


한창 그 음식에 맛을 들인 네 살 딸아이가 삐뚤삐뚤 적은 이름이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우와 하는 함성과 함께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그거'라는 종이를 들고 있는 아이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 집 요리 그거는 드디어 정식 이름을 갖게 됐고 가족들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맛있게 그거를 먹었다. 그날 이후 삼십 년 세월이 흘렀다.


한 결 같이 맛있었던 '그거'를  이제는 먹기 어렵다. 엄마가 아파서 주방에 서지 못한다. 몇 번 여러 가족들이 그거에 도전장을 내밀어 봤는데 예전에 먹던 엄마표 '그거'의 맛이 아니었다. 혹시나 비슷한 음식이 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역시나 비슷한 음식이미지를 찾지 못해 설명하기도 힘든 우리 집 '그거.'

어쩌면 다시는 맛보지 못할 음식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아직도 그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고 기억되는 맛이 있고 즐거웠던 순간 그리고 가족을 위해 주방에서 기쁘게 음식을 하시던 엄마를 향한 애틋함이 살아있다.


엄마가 다시 주방에 서서 고운 미소지으며 그거를 만들어 주시는 날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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