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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Sep 23. 2023

마지막 막걸리


손가락으로 누르면 쪽빛 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이다. 오늘처럼 하늘이 파랗고 예뻤던  그날. 아버지는 말없이 멀리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당신 눈에 무언가 담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임종 실 창밖에 누군가와 대화하듯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오랫동안 하늘을 보다가 숨 한번 크게 쉬고는 천천히 눈을 감으셨다. 눈꺼풀 내려오던 중간쯤에 내 눈과 잠시 마주쳤다. 그때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 같다.   

   

내 기억 어디에도 우리가 단란했던 모습은 없다. 남들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까 많은 사랑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정작 나에게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낡은 앨범에는 흑백사진 한 장이 있다. 아버지와 둘이 집 근처에서 어색하게 찍은 사진. 누가 봐도 다정하지 않다는 걸 알만큼 난 어정쩡하게 아이답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춘기가 되어 이성에 관심을 가질 때도 난 아버지와 반대인 사람을 열심히 찾았다. 하루라도 빨리 그 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서둘러 결혼하고 내게도 자식이 생겼다.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 자식의 마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 사랑. 시간이 흐르면서 풀고 말고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세상 풍파를 겪으며 비로소 부모의 삶이 무언지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가 노인이 되어 있었다.     


인생 말년에 아버지는 엄마와 단둘이 산속에 들어가 전원생활을 즐겼다. 젊은 시절 미안함 대신 엄마에게 주는 속죄 선물인 듯했다. 둘은 아담과 하와처럼 살았다고 엄마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걸 보면 꽤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건강 문제로 아버지가 쇠약해져서 채 오 년을 살지 못하고 결국 도시로 돌아왔지만, 그동안 아버지 성격이 부드러워 진 것도 가족들에게는 선물 같았다. 농담도 잘하고 외출하자면 얼른 일어나서 준비도 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을 보며 낯설고 신기했다.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가는 엄마를 돕기 위해 아침 일찍 친정으로 가서 엄마를 꽃단장시켜 모임 장소에 모시고 나서 아버지와 둘이서 처음으로 드라이브에 나섰다.  

    

“ 아빠 우리 어디로 갈까요?  칼국수 먹으러 갈까요?”

“ 아무 데나 괜찮아. 딸 가고 싶은 데로 가.”     

 

가족들과 가끔 들르던 왕릉 근처 칼국숫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단풍이 한창인 계절이라 아버지와 첫 데이트를 하는 마음처럼 눈도 즐거웠다. 아버지도 주름이 더 깊게 패는 줄 모르고 웃어 보였다. 처음이었다. 왜 이제야 이 기분을 알게 됐을까. 죄송한 마음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식당 안. 주문을 받기 위해 종업원이 왔는데 흥에 겨운 우리 아버지는 엉뚱한 말씀을 하신다.     


“ 음, 우리 딸.”     


묻지도 않았는데 주문 대신 딸을 먼저 소개하는 아버지. 눈치 빠른 종업원이  이 상황을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 어르신 따님이랑 데이트하셔서 좋으시겠어요.”    

 

아버지는 딸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행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슬퍼졌을까.  처음 들어보는 높아진 아버지 목소리가 낯설었다. 평생 입 닫고 살았던 우리 아버지가 그즈음에 자주 웃었다. 손가락 하트도 하고 두 손들어 머리 위로 커다란 하트도 그리셨다. 처음부터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을 텐데 우리가 알지 못했던 건 아닐까?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표현하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생각하니 마음이 저렸다.   

  

칼국수와 곁들여 나오는 막걸리 석 잔이 아버지 주량의 전부였지만 술 항아리 세독을 마신 듯  흥에 겨워하셨다. 아직 음식이 반이나 남았는데 아버지는 지팡이를 휘적이며 계산대로 나가셨다.  지갑 열면서 또 내 쪽을 가리키신다. 아마도 딸과 데이트 중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가을이 가고 겨울의 끝에 찾아온 감기가 폐렴이 되고 봄이 다 가도록 떨쳐 내지를 못하더니 유월 푸르던 날에 아버지는 홀로 하늘 여행을 떠나셨다. 결국 아버지와의 첫 데이트가 마지막이 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시는 길에 보고 싶던 친척들도 만나고, 하고 싶던 말씀도 두루 하시고 편안한 모습으로 담담히 떠나는 아버지 곁을 지킬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람의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나는 평소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그제야 들려 드렸다.  

    

“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계신 하늘. 그 푸른 하늘을 그때 아버지가 바라보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본다. 거기서 잘 지내시는지, 지금은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알고 행복하신지….  


매번 똑같은 인사를 아버지의 하늘에 전해 드리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처음처럼 시리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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