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때 이후 신을 믿지 않았고, 그래도 혹시 기도 할 일이 생기면 로저스 아저씨를 떠올렸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내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꼭 뭔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열여섯 살 때부터 밴드에 참여해 쭉 음악가로 성공하는 꿈만 꾸었고, 엄마의 불만 어린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인으로서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꿈을 위해 싸워왔지만 이렇다 할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마법처럼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하필 우리 모녀사이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신이라면 절대로 내 몽상이 실현되게 할리가 없을 테니까.(본문 368p)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부모님 살아있을 때 잘하라는 말과 더불어 ‘나는 신의 목을 졸라서라도 자식의 성공을 소망하는 엄마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양쪽으로 쳐들어왔다. 신이 부여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아무리 신이라 해도 마음대로 끊어 갈 수 없는 질긴 인연이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오래 기다려 어렵게 내 차례가 올 때까지 한국요리를 소재로 하는 단순한 소설인 줄 알았던 이 책은 엄마가 딸을 낳고 그 딸이 또 딸을 낳아 살아가는 ‘사랑’,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엄숙한 성서.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마태복음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셀 자우너’는 엄마의 한국식 육아를 통해 한국말은 서툴러도 한국음식으로 세포까지 꽉 찬 찐 한국인이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삼겹살에 김치를 먹으며 자란 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태도로 살았고 스스로 미국인이기에 자유로이 본인의 꿈을 펼쳐가는 것에 당연함을 주장한다. 그녀는 이해되지 않는 한국 엄마의 육아법에 갈등한다. 음악에 대한 꿈을 보란 듯이 이루기 위해 부모를 떠나 간섭받지 않는 시간을 살면서 미셀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엄마를 불편해했다.
삶은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아 자취방을 찾아온 엄마에게 누추한 모습으로 설 수밖에 없었다. 모녀는 서로의 진심을 전할 수 없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괴로웠다. 그나마 소통의 길은 한국음식뿐이었다. 어느 날 엄마의 췌장암이 손쓸 수 없이 진행된 후에 발견됐다. 미셀은 엄마를 보러 고향으로 가는 길에 그동안 엄마를 애 태우기 위해 짐짓 외면했던 때와는 달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스스로 옷매무새를 고치는 자신을 본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엄마는 좋아하던 한국음식조차 삼킬 수 없게 되지만 가족이기에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하며 이별을 준비한다. 엄마가 떠나기 전 자신에게 가족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서둘러 피터와 결혼하지만 엄마는 시간의 시간은 짧았다. 병원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간호를 받던 중 마침내 엄마는 삶의 끈을 놓았고 가족은 엄마가 잠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작별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애써 외면하지만 엄마는 곳곳에서 미셀의 곁에 사는 듯했다. 불안한 일상을 느끼는 미셀. 그녀는 망치여사의 유튜브 조리법을 따라서 된장찌개를 만들고 항아리도 사서 김치를 담근다. 비로소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한국음식이란 것을 깨닫는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음악의 꿈을 기적처럼 이룬 미셀. 아시아투어공연을 하며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에 온다. 열정적인 무대가 끝나고 한국식 파티를 하며 소맥에 취한다. 잠시 한국에 머물며 엄마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귀국할 무렵 이모부부의 안내로 가벼운 여행을 하면서 엄마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서 엄마와 이모의 추억 노래 커피 한잔을 열정적으로 부른다. 이모는 미셀에게서, 미셀은 이모에게서 엄마를 찾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책은 끝난다.
책 전체에 등장하는 한식은 그들의 의사소통 도구였고 식재료 한 조각은 고향이었다. 엄마라는 큰 우주를 잃은 딸은 엄마와 함께 다니던 H마트에서 엄마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는 슬피 운다. 빛바랜 어릴 적사진을 찾은 때처럼 가끔은 엄마와의 추억으로 위로받겠지만 추슬러지지 않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것을 미셀은 책에 담아 우리에게 전했다.
읽는 내내 먹먹했던 통증이 결국 책장을 덮으며 눈물로 흘렀다. 내 엄마와 내 아이의 엄마라는 두 지점을 앞에 두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W마트에 가서 저녁 장을 보고 돌아왔다. 내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익숙한 사랑을 담아 식탁을 차리고 아이를 불렀다.
“ 아들 밥 먹자.”
아들은 식탁에 앉아 밥을 한 술 먹었다. 똑같은 밥상일 텐데 엄마의 사랑 한 스푼 더 들어간 것을 알았을까? 한마디 뱉는다.
“ 맛있는데요.”
밥상을 마주하고 아들과 오랫동안 수다 떨며 웃었다. 아들이 나를 오래 기억하기에 적당히 평범한 밥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