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조국《법고전 산책》을 읽고

by rosa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기 위해 마을에 딱 한 군데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뉴스는 이미 안 본 지 오래, 그나마 유튜브에서 겨우겨우 사정을 알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책이라도 사서 힘 하나 보태자는 생각으로 달려간 서점. ‘조국의 시간 30% 할인’이라는 표지 밑에 책이 쌓여 있었다. 할인의 이유가 궁금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하려고 책값을 낮췄다는 시골마을 서점 주인의 대답에서 공감을 보았다. 고마운 마음에 두 권 사들고 와서 한 권은 동생에게 주었다. 나보다 더 깊이 있게 정치에 관심을 두는 동생이 무척 고마워했다. 나는 그런 동생이 더 고마웠다.


〈그대가 조국〉은 텀블벅에서 예약하고 역시 동생과 비 오는 날 서울에서 첫 번째 상영을 눈물 훔치며 관람했다. 그리고 세 번째 내가 선택한 조국은 《법고전 산책》이었다. 직전 두 번의 기회를 통해 만난 조국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는 것이 나의 첫 느낌이다.


나는 책 읽는 5070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비슷한 나이 대 사람들을 모아 독서와 토론을 하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며 지낸다. 톨스토이, 헤세, 괴테 등의 작품을 읽으며 그들 사상의 바탕이 되는 계몽주의니 자연주의니 하는 철학이 늘 궁금했었다. 서평에 말들은 누구를 향해 쓴 것인지 읽어도 그 뜻을 완벽히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마침내 《법고전 산책》을 통해 루소, 로크, 에밀, 사회계약, 자유, 인권 등의 단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혁명과 근대국가의 출발도 비로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동안의 답답증을 책 한 권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 작가의 깊고 넓은 지식의 방대함에 놀란 동시에 이를 쉽게 풀어 현대 우리 사회에 접목한 접근 역시 감동스러웠다.

‘잘못된 정부에서는 이 평등이 피상적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가난한 자는 계속 빈곤 속에서 살고 부자는 계속 수탈하도록 하는데 쓰일 뿐이다. 사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에게는 유익하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해롭다’(본문 1장 사회계약 39쪽)

‘무지의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악독한 행위에도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깨달음의 시대에는 가장 선량한 행위를 하면서도 불안에 떤다.’ 72쪽(2장 삼권분립과 법을 만드는 방법)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공감의 부분이 있었지만 나는 위의 두 문단에서 시리도록 닮은 우리 현실을 보는 듯했다. 5.18 민주화 운동 때도, 넥타이 부대들이 을지로를 뒤덮었을 때도, 이 한열 열사의 죽음 앞에서도, 박근혜의 탄핵 촛불 앞에서도 지금 느끼는 무력감보다는 덜했다. 깨어있는 시민의 집단지성도 현재의 독재권력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작금의 사회는 수백 년을 순식간에 회귀해 버렸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에서 부부 이외의 성관계를 금하는 법안을 상정하려 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책 내용에서 언급했던 주홍 글씨가 생각나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정부는 어느 시대 정부인가. 그들의 무지 무능이 이제 애처로울 지경이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의 적폐가 작금의 폐단을 나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자는 어디 가고 기레기만 들 끌어 받아 적고 한통속으로 조롱하는 이 시대에 언론은 죽었다.

그래서 이 한 권의 책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시대의 소용돌이라는 말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살았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 앞에 있어도 정의, 진실, 자유, 민주 이런 말들을 방패 삼아 헤쳐 나아 갈 거라 굳게 믿었기에 기다림의 시간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암울한 시간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해진 임기가 중요치 않다. 그 시간 이전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알 수 없기에 아프다.

대책 없는 자의 어이없는 말실수로 전 국민은 듣기 평가를 당했으며 자고 나니 선진국에서 깨어보니 후진국이 되었다. 축제에 나선 젊은이들을 떼죽음 당하게 만들고 도 책임이 없다는 인간들의 세상.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다 결국은 제 머리 위에 적기가 왔는지도 모르며 술에 취한 자. 온 인생을 걸고 명예 회복을 위한 진실된 사과 한마디를 기다렸던 우리 할머니들을 찬 바닥에 패대기치는 냉혹한 정부. 하다 하다 제 편도 물어뜯어 숙청해 버리는 짐승의 무리.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라 하고 욱일기를 햇살무늬 깃발이라 하는 쓸개 빠진 인간들을 보며 이전 오 년 동안 우리가 누렸던 세상이 얼마나 당당하고 따뜻한 세상이었는지 새삼 그립다.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이다. 이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이다. - 이것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또한 공동체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생존의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권리 주장이다.’ 321쪽(7장 권리)


‘현명함의 마지막 결론은, 날마다 자유와 생명을 쟁취하는 자만이 그것을 향유한다는 점이라.‘ 340쪽(7장 권리)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것은 말하지는 않아도 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집단지성이 우리에게 있어서 저항할 수 있고 그래서 마침내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경험을 통해 안다는 점이다. 매주 차가운 거리에 나와 외치는 소리를 귀 있는 자는 듣는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우리의 외침은 벚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더 찬란하게 퍼져나가리라.


8장 악법도 법인가에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관한 장면들이 묘사됐다. 이를 읽는 동안 포토라인에 선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고 오늘 나온 1심 결과를 생각했다. 소크라테스가 하늘에서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

검찰공화국, 검찰 독재 정치에 희생제물이 된 작가의 오늘 결과가 고대 아테네의 심판만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분노가 앞선다. 2019년 가을 서초동에 밝혀진 촛불을 보고도 멍청한 사법부는 그에게 유죄를 구형하니 이천 오백 년을 후퇴한 이 재판을 후대에 뭐라고 변명할 것인지….


조국이라는 사람이 처음 나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백팩을 어깨에 걸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청와대 초기 출근길 장면이 아니었다 싶다. 이후 아름다운 정치인을 보는 사심이 컸다. 평화와 여유, 열정, 진심 …. 그 모습이 그립다. 낡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늦게나마 딸을 위한 생일 케이크 상자를 들고 서 있는 슬픈 뒷모습도 잊히질 않는다.

쉼 없이 투쟁하고 견뎌내는 작가와 그 가족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이다. 그래서 작가의 책 한 권 영화 한 장면에 부채의식을 느끼며 서둘러 동참한다.


겨울 뒤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걸 저들도 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지독히 구는 지도 모른다. 작가는 서문에 목에 칼을 찬 채로 어두운 터널을 묵묵히 걷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둡고 두려운 길을 걷고 있지만 돌아보면 당신의 뒤를 밝히는 수많은 촛불이 있음을 잊지 말고 외롭다 생각지 말고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주길….

응원하는 마음 여기 하나 더 보탠다.(2022년)

삼년은 너무길다..(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