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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Dec 21. 2023

딱? 퍽? 쩍?



딱? 퍽? 혹은 쩍?

단단한 물체가 깨지는 소리를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어휘력이 빈약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두 주 전, 독서 토론을 함께하는 회원들과 송년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자고 약속했다. 지난해 식당에서 가진 모임이 영 시원치 않았기에 방법을 바꿨는데.


이왕이면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한주일 내내 준비하며 즐거웠다. 부모님 때부터 내력인지 나는 집에 누군가 와주는 것이 참 좋다. 가족이 됐던 친구가 됐던 사람 발길 따라 행복도 따라온다고 믿는  나의 미신일지 모른다.


명절이면 항상 이불빨래가 준비의 시작이었다. 엄마가 그랬던 기억이 내게로 대물림된 듯했다. 이번에는 잠잘 계획이 없어서 이불세탁은 생략. 대신 거실을 차지한 러그욕실발판 수건들을 죄다 빨았다. 손님들이 와서 다 쓸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스럽게 준비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청소 덕분에 식탁 위를 점령했던 잡동사니들이 사라졌다. 집이 세 평쯤은 넓어진 것 같은 착시가 즐거웠다.


오는 손님들이 한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오는 홈파티로 계획했으니 뷔페스타일이 좋을 것 같아 접시란 접시를 다 꺼내 씻어 말리고 아끼는 와인잔과 수저세트도 손님용으로 맞추어 놓았다. 단출한 두식구 살림이라서 식기장 구석에 묵어있는 그릇들을 이럴 때 한 번씩 목욕시키는 것이 습관인 나. 요란한 청소와 정리로 말끔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개운 한 느낌이 좋았다.


마침 눈이 펑펑 내린다. 향초를 켜고 음악을 준비하고 풍선도 몇 개 장식하니 제법 송년파티장 분위기가 났다. 흡족할 만큼 공간세팅이 끝났다.


이제 나를 꾸밀 시간.

공들여 목욕재계하고 욕실 청소까지 마쳤다. "완벽해!"라고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하수도 구멍에 머리카락 몇 올이 거슬렸다. 이것만 주우면 정말 끝이다.  


, 퍽, 혹은 쩍.

낯선 소리와 함께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마로부터 뭔가 흘러내린다.

피다.


죽기 직전에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후다닥 지나간다고 했던가. 슈퍼컴퓨터를 작동한 듯 이마에 흐르는 피를 지혈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병원에 가야 한다. 운전은? 가까우니가 내가 운전해서 갈까? 아니야 그러다가 의식이라도 잃으면 대형사고가 난다. 119. 119.


" 여기 신남리인데요"

" 환자분 상태가 어떠신데요."

" 피가 나요"

" 곧 출동하겠습니다."


옷을 입자.

신분증 챙기고.

아차 촛불을 꺼야 된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 119 대원입니다. 눈 때문에 지역 구급차가 다 출동해서 팔탄에서 출발하면 30분 걸립니다."


나의 슈퍼컴퓨터가 재차 작동을 시작했다.

"오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오지 마세요."

내가 운전하면 오분이내 도착할 거리에 병원이 있는데 30분을 기다리라니 전화를 다 끊기도 전에 나는 차 시동을 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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