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M, Y, K, H 그리고 나, 우리는 대학 동창이다.
스무 살에 만나 지금까지 친구니까 요즘 말로 ‘베프’이다. 사십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끼리는 터질듯 한 청춘으로 산다.
우리가 만난 곳은 3년제 간호대학이었다. 전후기 입시 실패로 인해 얼 만큼쯤 상처가 있는 상태였기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느 날 학교 앞 횡단보도 부근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 로사?”
그 소리의 끝에는 ‘네가 왜 여기에?’ 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듯 했다. M이었다. 중학교 동창이던 그녀의 소리를 짐짓 외면했다. 초록 불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 로사, 네가 여기 왜?”
“ 어, 오랜만. 나 여기 다녀.”
“ 반갑다. 너를 여기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 그래, 반갑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내 마음은 도망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창피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M은 자꾸만 내 곁을 맴돌았다. 내 기억 속 그녀는 그리 활달하거나 말이 많은 친구는 아니었다. 유난히 피부가 희고 팔다리가 가늘어 코스모스를 닮은 조용했던 친구. 이름 정도 아는 친구였는데 이렇게 반가워하는 걸 보면 그녀 역시 여기에서 겉 돌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그래도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M을 피하느라 며칠을 다른 길로 다녔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툭툭 그녀가 튀어나와 ‘로사야’라고 불렀다. 그렇게 나는 평생의 단짝을 만났다.
M의 친구 Y를 알았고 Y의 짝꿍 K 와 H까지.
국가고시를 치러야 하는 전공 특성상 4년 치 과목을 3년 동안에 배워야 하는 간호 전문대학은 고등학교처럼 강의 시간표가 빡빡했다. 덕분에 교직 두 과목을 빼고는 항상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모이는 시간이 많았다.
Y의 세련된 차림은 나와는 비교되는 고급스러움이 있었다. 항상 책을 읽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학교 근처에서 언니와 함께 생활하는 그녀의 자취방을 우리 아지트로 삼았다. 최신 소설과 온갖 읽을거리들이 빼곡한 그녀의 책장이 부러웠지만 멋진 옷들로 가득한 언니의 옷장도 우리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패션 감각은 언니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K는 충청도 사투리를 편하게 쓰는 순박하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허리는 한 줌이고 발목은 부러질까 염려될 정도여서 그녀가 뛰면 걱정이 됐다. 그런 K가 산에 오를 때만은 날다람쥐 같아서 맨 앞에서 우리를 이끌곤 했다. 항상 예쁜 미소를 잃지 않았고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천사 표 친구.
에너자이저였던 H는 언제나 열정 넘치는 장미 같은 친구다.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주위를 밝게 했다. 한시도 몸을 그냥 두는 법이 없는 그녀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부지런한 친구다. 환갑이 코앞인 나이에도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는 멋진 친구. 그녀의 조금 늦은 합류로 우리는 독수리 오 형제처럼 완전체가 되어 오늘까지 함께하는 베프가 됐다.
한 학기가 지날 무렵 다른 학우들은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안 보이면 ‘△△는 어딨니, 안보이네.’ 할 만큼 우리는 늘 함께였다.
우리 친구들의 공통점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전공이 간호학이라서 그랬을까 우리는 모이자는 시간에 늦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10분 일찍이 일상이라서 직업은 못 속인다고 우리끼리 말하면서도 웃는다. 독서와 여행 또한 지금도 우리를 이어 주는 관심사이다. 우리의 발길이 머물렀던 곳, 함께 읽었던 책 속에는 젊음이 마법처럼 살아 있어 우리가 소환하면 언제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참 좋다.
친구들을 보면서 사는동안 공유했던 많은 시간 속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때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나누며 쌓은 추억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탄생한 순간에도 부모님을 잃은 순간에도 좋은 곳이든 험한 곳이든 언제나 먼저 달려가 기쁨과 아픔을 나누었던 우리 친구들.
각자의 치열한 삶 속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했던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스무 살 그때 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그렇게 치유하고 있었는지도….
작년 공직에 있던 두 친구가 정년을 코앞에 두고 나란히 승진했다. 우리의 기쁨은 두 배가 아니라 다섯 배가 되어 즐거웠다. 두 주 차이로 승진의 결과가 나왔을 때 처음엔 승진하지 못한 친구 쪽으로 더 마음을 썼다. 마침내 두 번째 소식이 나온 날은 눈치 볼 것 없이 맘껏 축하하고, 축하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항상 긍정 에너지 넘치는 나의 친구들. 지금껏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 온 우리. 이제는 옆도 보고 뒤도 보며 여유롭게 인생 후반까지 멋진 노후도 설계해 보고 싶다. 내 어려운 시간에도 큰 힘이 되어 주고 언제나 위로를 주었던 고마운 나의 벗들. 오늘 그들에게 스무 살 그때처럼 푸른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