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청춘

by rosa


스무 살에 시작한 우리 여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미련이 화석 되어 각자 돌덩이 하나씩을 숨기고도 아닌 척 살아가는 시간에서 탈출할 해방구는 여행이었다.

처음엔 일요일 하루 근교 산행을 시작했다.

근처 팔달산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광교산, 관악산. 자연농원, 민속촌 그렇게 야금야금 자유를 찾아 떠나는 시간이 우리를 숨 쉬게 했다.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던 그 시절에는 누구나 배낭에 버너와 코펠을 챙겨 라면 하나 끓여 먹는 것이 낭만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계곡에 발 담그고 유행가를 목청껏 외치는 것으로 한 주일 쌓인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여행에 선두는 M이었다.

공직에서 퇴임한 아버지를 둔 그녀. 부모님은 유난히 다정해서 눈 떠 보면 두 분이 여행 간다 쪽지 한 장 달랑 두고 며칠씩 사라졌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M은 여행 정보가 많았다. 수도권을 맴돌던 우리의 발길은 M에 이끌려 점차 전국의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매주일 여행을 떠나기에는 부족했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알찬 여행을 하는데 M은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진짜 큰 문제는 거리가 멀어지며 밖에서 하루를 자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하루도 허락 없이 밖에 잠을 자 본 적이 없던 상황을 돌파해야 했다. 어렵게 엄마에게는 여행에 대한 말을 내어도 아빠의 허락은 구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대담한 사고를 쳤다.

여자가 외박은 절대 안 된다는 아빠의 호통을 못들은 척 1박 2일의 여행을 감행했다.

대둔산 잊을 수 없는 첫 외박이었다. 그래야 밤기차를 타고 움직였기에 사실 외박이라 할 수 없는 이동이었지만 나에게는 종아리쯤은 내놔야 하는 모험이기도 했다.


비둘기호라는 가장 싼 기차가 없었다면 우리 여행은 출발도 못할 때였다. 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상기된 우리의 모습이 지금도 낡은 앨범 속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등산화도 등산장비도 하나 없이 그 험한 산을 어찌 다녀왔는지,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을 그때는 겁 없이 시도하던 젊음의 시간이었다.




문제는 돌아와서 터졌다. 살면서 가장 크게 야단맞은 날로 내 기억에 남아 있지만 다행히 종아리는 무사했다. 대신 엄마는 밤새 나 내신 아빠의 구박을 견뎌내야 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웠다. 두 번 , 세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배짱이 커졌고 아버지는 체념이 빨랐다.

우리 여행은 하루에서 이틀 그리고 사흘로 이어져 마침내 전국의 산들을 정복했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 출발 하는 우리 청춘들의 겁 없는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고의 여행은 제주도 무전여행이다.

당시만 해도 무전여행이 가능했던 인심이 있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 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가 시작됐다. 영어를 지도하던 김 OO 교수님 고향이 제주란 점이 우리를 부추겼고 여름 방학이 시작된 스물한 살 우리들은 드디어 제주로 향하는 가장 싼 배를 타기 위해 목포행 비둘기호에 올랐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1985년 여름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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