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낭만의 섬 제주.
여행을 떠올리면 일순위에 제주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좀 살만해졌나 보다.
강산이 네 번 바뀌기 전, 가진 것은 젊음뿐인 우리에게 제주는 닿기 어려운 그저 신비의 섬이었다.
스물한 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동시에 우리는 일주일치 무전여행을 위한 엄청난 크기의 배낭을 메고 목포항에 도착했다. 제주로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목포에서 출발하는 ‘한일호’를 타는 일이었다. 긴 시간 배타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닥칠 위험을 모르는 겁 없는 도전. 아직은 낭만이 대세였다.
제주는 육지 비바리들의 입도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점심 무렵 출발한 배는 아침에야 제주항에 우리를 던져두었다. 배안에서의 긴 시간 우리는 시작부터 초토화 됐고 제주는 혹독한 신고식을 요구했다. 낭만으로 설레던 우리는 항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숙소에 널브러졌다. 태양이 고꾸라질 즈음에 겨우 눈을 떠 바다로 사라지는 일몰을 감상했다. 제주의 첫날이었다.
처음 보는 야자수 이국적인 풍경에 피곤은 저만치 달아나고 에너지 가득 채운 우리 시간이 준비되었다. 즐겨보자 제주.
무전여행의 최고병기는 배낭 속 취사도구와 식료품들이었다. 아직 취사제한이 없던 시기라서 가능했다. 가끔은 그때 먹던 코펠에 끓인 라면이 그리워진다.
다음은 이동수단, 마지막이 숙소였다. 베이스캠프인 서귀포 중문 교수님이 기다리는 집까지 가는 하루 목표를 정하고 함덕을 거쳐 일출봉 방향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거리가 멀 때는 버스를 탔지만 짧은 거리는 도보와 히치하이킹이 대세였다. 최고의 재미는 경운기를 태워주신 삼춘(제주에는 모든 어른을 그렇게 부른다)이 주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지만 무조건 크게 웃는 리액션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디든 원시적 생명이 살아 있는 제주를 만날 수 있었다.
이동 연락 수단이 없던 시절, 달랑 전화번호 하나 들고 찾아가는 중문에 밤이 깊어서야 도착했다. 예정된 날짜를 하루 지나 도착한 우리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지 교수님이 걱정 섞어 크게 웃으셨다. 베이스캠프가 있어서 든든했지만 거기에 안주하는 것은 무전여행의 낭만과 배치되기에 하루 밤 충전을 마치고 우리는 씩씩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참, 한 가지 준비해 둔 선물이 있었다. 가이드 남학생을 한 명 소개해주셨다. 제주대학교에 재학 중인 복학생 형(그때는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이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훈남 스타일의 형은 3일간 우리 일정에 동참해 가이드 역할을 훌륭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준비한 식량은 축났지만 제주의 속살까지 볼 수 있었고 멋진 보디가드가 돼주었다. 이름을 잊은 점은 미안하지만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훈남 형으로 푸르게 살아 있으니 이해해 주길.
나름 육지에서 오는 여대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텐데. 우리는 천방지축 말괄량이 일뿐이어서 형에게 실망을 준 것은 유감이다. 애당초에 남과 여의 구도는 존재하지 않았고 형도 삼일 만에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음은 다행이었다. 남자 여행객들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여대생 속에 청일점이 부럽다고 했지만 형은 “NOPE” 단호한 대답으로 또 다른 웃음을 주었다.
처음 닿는 발길마다 신비로운 제주는 우리의 탄성을 들었을게다. 에메랄드 바다를 보며, 지구과학의 표본 같은 오름을 보며, 속속들이 감춘 동굴을 보며 바다에 삶을 일군 해녀를 보며 매번 숨길 수 없는 감동을 환호하며 맞았다. 형은 매일 보는 자연에 감탄하는 우리를 보며 재미있어했다.
여행지에 셰프는 언제나 나였다. 집에서는 물 한 컵 떠먹지 않는 공주였지만 캠핑에서는 걸스카우트 출신 요리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텐트를 치는 것도 알코올버너에 불을 댕기는 것도 척척 인 나를 보며 친구들이 든든해했다. 대신 셰프는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여행하며 몸무게가 늘었다는 친구들의 원성은 칭찬이고 응원이었다.
형과의 마지막 날은 형의 고향인 한림 근처 협재 해수욕장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직은 해수욕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운 모래사장 검은 돌이 보석처럼 박힌 바다는 우리의 입수를 반겼다. 동해와 서해만 보던 육지 것들이 즐기는 제주바다는 젊은 에너지를 폭발하게 했고 수영복에 가려진 아찔한 열정을 보는 제주 형은 그제야 헤벌쭉거렸다.
바다에서의 몇 시간은 형의 스트레스를 확 날렸다. 고 생각했는데 반격이 시작됐다.
여자들끼리 하는 캠핑에서 가장 염려되는 것은 치안이다. 나름 여행을 지속하며 터득한 경험으로 우리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그날은 여름 해변파출소 근처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했다. 물놀이로 허기 진 상태에서 솔솔 풍겨오는 참치찌개 냄새는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때였다. 그동안 즐거웠다고 손 흔들며 떠난 제주 형이 양손에 유리병 두 개를 들고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 제주까지 와서 한일소주 안 마시면 여행한 게 아니지.”
지금은 볼 수 없는 됫병소주(이거 알면 나이 확인 됨) 두 병의 뚜껑을 열었다.
“ 제주 식은 술 안 따라줘 알아서 마셔.”
우리 중에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몇 잔은 마실 수 있는 터라 대작의 링 위에 밀리다시피 올라앉게 되었다. 잔은 따로 없으니 코펠세트에 있는 밥공기가 대체되었다.
진로소주는 그에 비하면 설탕물이었다. 알코올을 마시면 그럴까 소주에서 느껴지는 단맛이라고는 일도 없는 독한 술. 그래도 생각해서 사들고 왔으니 예의상 대작을 시작했다. 어차피 술을 모르는 친구들은 관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렵게 넘긴 한잔 보다 두 번 째는 수월했다. 세 잔 째는 없던 단 맛이 느껴졌다.
“ 잘 마시네. 진로소주에 비하면 독 할 텐데 조심해라.”
걱정인지 도발인지 형은 실실 웃으며 술잔을 비워갔다. 여행 중에 섭섭함도 툭툭 뱉는 걸 보니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걱정하는 친구들이 내게 눈치를 주었다. 그런데 반쯤 병을 비운 이후부터는 오히려 맹물 마시는 느낌이었다. 취하기는커녕 앞에서 주정하는 형을 보며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슬슬 올라왔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 뭔 가시나가 술이 이리 세나.”
“ 진 거지? 항복하셔 얼렁.”
“ 졌다. 네가 이겼다.”
난생처음 ‘됫병 소주 한 병 대전’에서 승리했다는 기쁨도 잠시
“ 소주 먹었으니 입가심하고 자야지” 라며 맥주 한 병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당했다.
소주를 그렇게 먹어 본 적도 없고 맥주를 섞어 먹어 본 적도 없는 나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이후 기억이 없다. 필름이 끊긴다는 말을 제주에서 처음 체험했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여긴 어디? 텐트 지붕이 평소보다 높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려도 상황을 알 수 없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때 M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자”
친구 손에 이끌려 나오는데 짧은 머리 남자들이 여럿 보였다.
“어떻게 된 거?”
맥주까지 다 마시고 제주 형은 비틀거리며 돌아갔고 나는 얌전히 텐트에 들어가 잤단다. 문제는 늦은 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고 텐트에 물이 들어 여름파출소로 숙소를 옮겼는데 나만 쿨쿨 잠들어 있어 결국 건장한 파출소 순경이 번쩍 들어 침상에 뉘었단다. 친구들은 빗속에 짐 나르고 정리하며 고생하는데 나만 세상모르고 숙면했으니. 그래도 술병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콩나물국을 끓여준 친구들과 앞으로 술상무해도 되겠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으며 웃었다.
이후 딱 6개월 동안 술 냄새만 맡아도 울렁거리는 증상을 경험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내 친구들 말고 아무도 믿지 않지만 바다가 보이면 아직도 소환하는 우리의 푸른 추억이다. (제주 여행기 2편 계속)
ps. 한일소주는 현 한라산 투명한 것의 원조 술이며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은 미지근한 맛(노지 것)이 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