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디카프리오

by rosa


우리 친구들은 제주여행의 하이라이로 단연 마라도 여행을 꼽는다.

80년대에는 마라도로 가는 정기배편 조차 없던, 그곳은 오지 중에 오지였다. 마라도를 꼭 여행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다면 길이 있다는데.


여행 중 처음으로 잘 차려입은 우리는 누가 봐도 서울아가씨들이었다. 배 위에서 드레스 자락을 날리며 영화 주인공이 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모슬포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편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조각배라도 얻어 타려는 우리에게 섬사람은 불친절했다.

어쩌나.


모든 배들을 통제하는 사무실에 우리의 천사가 있었다.


" 아가씨들 마라도 가는 배가 한편 임시로 생겼는데 조건이 있어요."

" 뭐든 다 되죠."


생각할 시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라도 상륙을 위해 수영도 불사할 태세인 우리에게 달콤한 유혹이 제시됐다.


" 마라도에 전투경찰 대원이 네 명 있는데 미팅하는 조건이에요."

" 와우, 당근 하죠. 가이드까지 해준다는데 못할 이유가 없죠."


임시로 마련된 배는 등대수리를 위해 출항하는 배였다. 수리가 늦어지면 당일 귀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아름다운 파도를 헤치고 배는 미끄러지듯 출항했다.


케이트 윈슬렛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때 우리는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마라도 항구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디카프리오가 있었다.


배에서 내리는 우리 손을 잡아주는 순서대로 파트너가 정해졌다. 제주에는 훈남이 많은가, 우리는 남남북녀를 현실로 이끌어냈다.


아직 외지인의 때가 묻지 않은 하느님의 조각품이 모두 거기 있었다.

바다, 바위, 초원, 등대 그리고 우리. 그 순간은 보이는 모두가 작품이었다. 군생활을 오지에서 하며 갑갑했던 청춘들에게는 육지 아가씨가 관심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섬에 도착했다는 것이 환희였다. 섬 한 바퀴를 데이트하듯 걷는 시간은 사십 분이면 족했다.


여행 경험이 많은 우리는 언제나 안전을 중요하게 여겼다. 항상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 일상인 데다 더욱이 모르는 남자들과의 오지에서 미팅이라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걷는 중간중간 서로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런데 K가 안보였다.


여행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의 안위였다. 친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며 오던 길을 달리는데 한적한 바위에 오붓하게 앉아 정담 나누는 둘을 발견했다. 우리 중 제일 얌전한 K는 순수의 대명사이니 위험에 대한 염려도 못하는 듯 배시시 웃었다. 이 사건은 나의 술 사건과 함께 아직도 회자되는 제주여행 추억이 되었다.


저녁밥을 해주겠다는 대원들의 숙소를 방문했다. 셰프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나섰는데 곱게 매니큐어 칠해진 내 손을 보며 취사담당이던 대원이 손사래를 쳤다.


" 그 고운 손에 물 묻히면 안 되죠."


오래전 기억이지만 예쁜 손을 칭찬해 주던 그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오래 걸릴지 모른다는 등대수리가 다행히(?) 일찍 끝나 출발한다는데 밥 못 먹여서 아쉽다는 대원들.

우리 욕심만 채우고 서운했을 그들에게 위로 한 마디 남기지 않은 것을 돌아오는 배에서 생각이 났다.


우리가 돌아와서 그들을 오랜 세월 추억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름도 희미해진 지금도 아름다웠던 마라도는 그 멋진 청년들과 함께 평생 추억으로 남았다.


잘 지내시나요,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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