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이천 이십 사년아

지옥 같았던 5월부터 12월, 드디어 끝났구나.

by 효돌이작까야


24년의 시작은 두려움이었고, 걱정이었다.

큰 아이의 입학, 막둥이의 입소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만큼 반드시 지나갈 시간이기에 버티면 된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2월 큰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을 시작으로 3월엔 입학식, 막둥이의 입소! 둘 다 적응시키고,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그렇게 4월 5월 조금씩 적응을 해나갈 즈음…

5월 어느 날 청천벽력.. 아버님의 심장이 멈춰서 교통사고를 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결혼하는 해에도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시술을 받으셨었는데.. 7년 만에 또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나도 많이 놀랐고 슬펐고.. 마음이 무너졌다.

남편에게 당신의 모든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셨다는 사실에 더..

더디게 회복하셨지만... 감사하게도 회복을 하셨고 지금 굳건히 곁을 지켜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이런 감사를 누리기에도 참 짧은 몇 주를 보내고 있는데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진다.


6월. 남편의 암 선고.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이번엔 나의 배우자다.

내 배우자의 대장 저 끝에 고얀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희귀한 것이.

연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희귀한 고얀 것이 있다고 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미어진다.

어째야 하나 정말.

남편의 암은 신경내분비 종양으로 유명인중엔 스티브잡스가 투병했던 암이다. 누군가는 8년 동안 제자리에서 크기가 자라지도 않고 옮겨지지도 않고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치료를 위해 항암을 했다가 전신에 퍼져 치료 전보다 빠르게 상태가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되기도 했단다.

대체 종 잡을 수가 없는 그지 같은 암이다. 하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은 0기 극초기로 발견이 되어 용종 떼어내듯 시술을 받으면 되었고, 항암을 진행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앞으로 너무 걱정하지 않고 지내도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와 두려움은 나를 집어삼켰고, 우리 가정을 공포로 잠식시켰다.

가족을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미치게 했다.



하지만 또 살아진다.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기에 살아진다. 생명은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6월을 보내고 7월

남편을 조금 돌보고 7월을 맞이하고 보니 이제는 아들이다.

큰 아들의 마음에 먹구름이 끼어있음이 보인다. 먹구름이 켜켜이 자아아아아안뜩 끼어서 과연 빛이 들어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제 고작 만 7세.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이제 맞이하는 어린아이의 눈빛에 무기력함이 보인다.

위클래스 상담을 통해 내 아이가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못하고, 가정이 편안하지 못한 곳임을 알게 되었고, 엄마라는 존재는 두려움과 무서움의 존재이며, 아빠와의 관계 역시 건강하지 못하고 사랑에 대한 갈증과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대체 언제 숨을 쉴 수 있나..? 내 하늘은 언제 올려다볼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잠깐 했다가 무기력에 빠져 생기를 잃어가는 내 아이의 눈빛이 보이면서 꺼져가는 아이를 먼저 살려야겠어서 나를 잠시 죽여보기로 했다.

극단적인 표현 이기는 하나 지금까지 아이보다 나를 우선으로 살았던 사람이기에 아이를 우선으로 살아보기로 했다는 뜻이다. 아이가 나에게 원했던 것은 곁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엄마, 옆에만 있어주면 돼, 뭘 하든 엄마랑 같이하면 다 좋아”라고 이야기하는 아이의 눈빛과 목소리에 또..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에게 결과를 위해 소리 지르고 지랄만 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이는 결과가 아닌 그저 내 곁을 원했는데 나는 그걸 모른 척했던 것이다.

상담을 통해 우리 큰 아이의 불안이 워낙 높고, 엄마와의 관계가 반드시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뜨겁게 여름방학을 보냈고, 아이는 회복이 되어서 2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 갈 때쯤 위클래스 선생님이 엄마인 나에게도 반드시 개인 상담을 하라고 했다.

개인 상담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글쓰기 강의를 듣기로 했다.

글쓰기 강좌 이름은 “엄마 치유 성장 글쓰기“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의 마음도 알게 되었고,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8월부터 12월까지 16주의 과정이었다.


9월엔 나의 가장 큰 상처인 다이어트 콤플렉스로부터 미미하나마 벗어나는 경험을 해보고

10월엔 꿈인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고

11월엔 도전을 싫어하는데 스마트 스토어를 준비하며 오픈하게 되었고

12월엔 글쓰기 강의를 마무리하며 문집을 준비하고 이사를 준비하며 정말 힘들고 지쳤지만 살아내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국가적으로 너무나도 피로하고 아픈 12월을 지냈다.

비상계엄령, 제주항공사고…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밝혀진 것들이 더 밝혀지고 드러나져서 벌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위로받고 사랑으로 치유되길.. 소망해 본다. 감히.


잘 가라 이천 이십 사년아,

삼십 칠 년을 살면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한 해다.

가장 많은 도전을 했고, 가장 많은 두려움과 마주 했다.뭐, 조금 유치한데 내가 너 이긴 것 같다.

25년은 이기고 싶지 않다. 함께 걸어가자 제발. 동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