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비열한 쓰레기를 만났다.
독서 모임에서
[뇌 과학과 심리학으로 치유하는 마음의 기술]이라는 책을 함께 읽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유난히 화가 많아지고
여과 없이 감정을 노출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쓰레기였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보다 아이들에게 화를 자주 내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화를 쉽게 쏟아내는 대상.
나 자신, 그리고 나보다 약자인 사람들..
뭔가 비린내가 난다.
찝찝하고, 기분이가 안 좋다.
저자는 화를 낼 때 정말 화라는 감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화를 내비쳤을 때 상대가 겁을 먹는 모양을 즐기고 있지 않은지 살피라고 했다.
여기서 비린내가 더 진하게 올라왔다. 후자를 즐기고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큰 소리에 무서워 겁을 먹는 아이 둘, 그리고 두려움과 겁에 질려 내가 하는 말에 복종하는 아이들
이걸 즐기고 있었다..
쓰레기.. 나는 진짜 쓰레기였다...
화를 적게 내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 안에 비열한 쓰레기를 마주하게 되는 직면의 고통의 시간이었다.
독재정치, 군사정치, 조직폭력배랑 뭐가 다른가 싶어서 스스로를 한참 욕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인정"
충격은 충격이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발견하게 되니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느꼈다.
슬슬 게이치가 차 올라서 불화살들이 나가려고 할 때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이성이 마비되어 본성대로 혼을 냈는데 본성을 멈추고 이성을 잡아와야 하니까.
하지만 할 수 있었다. 못하는 일이 아니었다. 분명 나는 해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일단 멈춤.
감정이 아닌 지금 내가 무얼 원하는지 생각.
크게 한숨 네다섯 번 쉬어내고, 차분히 이야기.
됐다. 화내지 않고 참아냈다.
처음에는 분출하지 못하니까 너무나도 가슴이 답답하고 꼭 체기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분을 내지 않아도 아이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움직이는 모습을 목도했다.
와, 이렇게 평화적일수가 있나.
와, 화내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거였나.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할 수 있는 사람임을 경험하고 나니까 다음에도 또 하고 싶어 졌다.
얼마나 칭찬해 줬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아이들만 칭찬할 일이 아니다. 어른인 나도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스스로 칭찬해줘야 한다.
깨달음, 발견, 성찰, 인정, 수용, 노력, 행함, 해냄.
처음 시작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지만 한 번 해내니까 또 하고 싶고 또 하고 싶다.
"화"라는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내어 공포를 이용해 나보다 약한 대상인 아이들을 복종시키려던 것이 영 역겨운 거다.
이걸 발견하지 못했던 지난날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완전한 인간이 아닌 발전하고 어제보다 한 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그렇게 조금씩 느리더라도 꼭 꼭 씹어서 소화시키고 발전해 가기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