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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준 도슨트 Aug 24. 2023

파워 외향형이 보고 남긴 것들

[클로드 모네] 찬란히 빛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다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절벽 (1885)>
클로드 모네, <에트르타 부근의 만포르트 (1886)>


 모네는 평생 한 곳에만 정착하여 머문 집돌이가 아니라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이사도 많이 다녔는데요. 물론, 젊은 시절엔 빚쟁이에게 쫓겨 다녀 자주 이사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다양한 곳을 탐구하고 새롭게 자신에게 자극을 주는 풍경을 찾아다니는데요. 1883년부터 1886년까지 3년간 모네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은 바로 에트르타 절벽입니다. 노르망디 해안의 코끼리 모양의 바위로 알려진 명소이죠. 모네는 여기에서 에트르타 풍경을 75점의 작품으로 남깁니다. 이 작품 중 일부가 한국에 전시되었을 때 직접 감상할 수 있었는데요. 작품을 마주했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림의 물감에 모래 알갱이가 섞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네는 에트르타 절벽 바로 앞에서 이젤을 몸에 묶어두고 그림을 그렸는데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떤 날에는 이젤과 함께 통째로 물에 빠지기도 했죠. 정말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대로 빠른 붓질로 담아냈던 건데요. 에트르타 절벽 바로 앞에서 캔버스와 팔레트를 펼쳐두고 그렸기에 바람이 불어와 날아든 모래알갱이까지 현장감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정원에서 작업하는 모네 (1873)> / 존 싱어 사전트, <숲 가장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1885)>

 이렇듯 새로운 그림, 인상주의의 탄생은 획기적인 발명품의 탄생과 그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화가들이 사용하는 도구에도 큰 변화가 시작되었죠. 이전시대까지는 안료를 섞어 열심히 반죽하고 그때그때 필요한 물감을 제조해서 사용해야 했는데요. 작업실에서 물감만 제조해주는 자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일이었죠. 물감을 가지고 야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동물의 방광에 물감을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렇게 보관하자 문제는 물감이 너무 빨리 말라버린다는 거였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땐 물감이 금방 말라버려 불편함을 느낀 존 랜드라는 화가는 물감을 밀봉하여 보관할 수 있는 튜브물감을 만듭니다. 일종의 화가들의 재료상, 1841년 튜브물감 회사를 창업한 것이었죠. 세계 최초로 휴대할 수 있는 튜브 물감 탄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획기적인 도구를 가장 반겼던 사람들은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이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인상주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튜브물감에 열광했던 클로드 모네가 있었습니다. 튜브물감으로 이동의 자유가 생긴 화가들은 더 이상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하는 것이 아닌 야외 햇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캔버스를 고정해둘 수 있는 이젤도 발명되었기에 이제 화가들은 작업실 안에만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간단한 도구를 챙겨 야외에 펼쳐두고 눈앞의 풍경을 즉각적으로 화폭에 옮길 수 있었죠. 그렇기에 모네는 자신의 눈에 비친 그 순간의 느낌과 인상을 빠르게 담았던 건데요. 이렇듯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동의 자유를 선물해 준 튜브 물감의 발명과 그 시작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모네의 인상주의는 튜브물감의 발명 그리고 근대화의 시작과 함께한 완벽한 타이밍이었습니다. 1874년 제1회 무명 화가, 조각가, 판화가 예술가 협회전으로 시작된 인상주의 전시회는 12년간 여덟 번의 전시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 시간 동안 프랑스 미술계에서 인상주의 작품은 이제 트렌드를 이끄는 주류가 되었는데요. 더 이상 벽지만도 못한 그림이라고 무시당하는 것이 아닌 모두의 시선을 끄는 사랑받는 그림이 되었죠. 모두가 주목하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 당연 이들을 이끌고 있는 리더로 인정받는 것은 클로드 모네였습니다. 모네의 그림은 1년에 몇 배씩 가격이 오르고 있는 파리의 가장 뜨거운 호응을 받는 그림이었죠. 19세기 말, 비로소 모네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젊은 시절 온몸으로 막은 악플과 비난의 설움이 모두 녹아내려가는 순간이었는데요. 오래된 전통의 흐름 속에서 새로움을 선보인다는 건 이렇듯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하나 봅니다. 익숙함을 깨고 우리에게 낯섦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건 노력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데요. 20대의 패기 넘치던 모네 역시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비로소 인정받기 시작했으니 말이죠. 오랜 시간이 쌓여 모네의 빛나는 그림을 하나 둘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화가에게 나의 그림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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