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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준 도슨트 Aug 31. 2023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이 돌일지라도

[클로드 모네] 찬란히 빛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늦여름 아침 (1891)>
“그곳에 단 하나의 풍경은 없더라”   - 클로드 모네 -

 

19세기 말, 모네는 프랑스의 국민화가로 떠올랐죠. 이때 사람들이 찾는 풍경화들을 계속 그리며 가만히 성공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상주의 그림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그만큼 익숙하고 흔한 그림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모네는 인상주의 스타일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갑니다. 


모네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연작’이었는데요. 같은 풍경, 같은 대상도 빛의 흐림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색감과 분위기를 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돌이라도 빛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라고 말하며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을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 〈건초더미〉시리즈는 모네의 다양한 연작 시리즈 중 대표작인데요. 모네는 왜 하필 건초더미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사실 모네의 집 앞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였다고 합니다. 곡창지대가 발달해 농사를 짓던 프랑스에서 건초더미는 들판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죠. 그렇기에 모네뿐만 아닌 고흐, 고갱 그리고 밀레와 같은 다양한 화가들이 건초더미를 그렸습니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눈의 효과 (1891)>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1890)>


하지만 다른 화가들과 모네의 시선은 조금 달랐는데요. 농민의 삶이나 당시 프랑스의 생활상, 문화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네는 그저 건초더미라는 모델을 세워두고 그 모델에 비치는 빛의 변화를 담고자 했죠. 계절과 날씨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초더미의 색을 포착하고 연작 시리즈로 구성하는데요. 집 근처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건초더미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화폭에 담았던 것이죠. 들판에 캔버스를 가득 깔아두고 빛에 의해 색이 달라질 때마다 빠르게 그려나갔습니다. 마치 우리가 삼각대를 세워두고 타임랩스로 일몰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처럼 모네는 캔버스에 그 순간들을 자신의 손으로 담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모네는 마치 자신이 과학자가 된 것처럼 아주 예리하게 자연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사실 모네는 짧은 붓질로 아주 빠르게 그림을 그렸기에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연작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간대와 다양한 날씨를 모두 겪어야 했습니다. 인내심이 많은 모네는 자신의 눈에 비친 그 순간을 그대로 붓으로 담아내기 위해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죠. 그래서 최소 두 계절이 지나야 그가 원하는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모네의 연작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묘사하고자 한 것이 아닌데요. 그 대상과 화가 사이에 존재하는 공기, 바람, 온습도 그리고 빛을 그리고자 했죠.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에는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풍경은 사실 그 순간 공기의 온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세기, 향기 그리고 때로는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로 기억되죠. 모네는 바로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그 기억을 그림으로 담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대상 혹은 사실을 바라보는데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는데요. 모네는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대상도 같은 풍경도 이리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화가 자신이 느낀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담아낸 세상에 단 하나뿐인 풍경화였습니다. 수만 가지 필터를 입힌 듯한 모네의 연작 시리즈는 빠르게 대중에게 퍼져나갑니다. 비평가들 역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에 극찬을 쏟았죠. 〈인상, 해돋이 (1874)〉를 선보인 지 17년 만에 거둔 의미 있는 성공이었습니다. 모네의 눈, 모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필터를 모두가 사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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