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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준 도슨트 Aug 17. 2023

빛이 땅에 닿는 찰나를 그리다

[클로드 모네] 찬란히 빛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다.


빛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대기와 사물의 아름다움을 매 순간 변화시킨다.’  - 클로드 모네 -


클로드 모네, <까치 (1869)>

밤새 함박눈이 내린 세상이 새하얀 눈밭으로 덮인 아침 풍경이 보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네의 풍경화 중 한 작품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 풍경이지 않나 싶습니다. 얼어붙은 겨울날 함박눈에 쏟아진 다음 날 아침은 여느 겨울날보다 포근함을 머금고 있는데요. 빛을 포착한 모네의 눈에 비친 겨울날은 사방으로 빛을 반사하고 있는 빛나는 풍경이었나 봅니다. 매서운 겨울날에도 온 세상을 녹일 것만 같은 따사로운 햇살이 눈에 띄는 작품이죠. 눈 오는 풍경을 보고 드는 감정에 따라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여러분은 눈 내리는 날 창밖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눈 쌓이면 나가서 눈 오리를 만들어야겠다!’ ‘펑펑 함박눈이 가득 내렸으면 좋겠다!’ 혹은 ‘이 많은 눈은 언제 다 치우지’ ‘출근길 차 막히겠다….’ 눈이 싫어지면 진정한(?) 어른이 된 거라는, 나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새하얀 겨울날 뛰어놀던 낭만보다는 현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른의 삶인 걸까요? 그런데 모네의 겨울날에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설렘이 가득 묻어납니다.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은 마치 설탕 같은 달콤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듯한 낭만적인 순간처럼 보이는데요. 설경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기뻐했을 화가의 감정까지 전해집니다. 이렇듯 클로드 모네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시간이 멈춘듯한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그렇고 그런,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을 기계적으로 그린 것이 아닌 화가만의 특별한 표현이 담긴 순간이었죠.


클로드 모네, <그르누예르 (1869)>

19세기 새로운 미술을 보여주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파리의 일상을 작품에 담았습니다. 더 이상 역사책에 등장하는 풍경이나 인물들이 아닌 파리의 가장 현대적이고 일상의 풍경을 담고자 했죠. 모네는 당시 파리의 핫플레이스, 파리의 젊음을 상징하는 곳으로 향합니다. 개구리 연못이라 불리던 그르누예르인데요. 파리지앵들이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며 식사하고 커피 마시던 여유를 즐기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서울의 여의도 한강공원, 노들섬과 비슷한 분위기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모네는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이젤을 펼쳐두고 나란히 그림을 그렸죠. 〈그르누예르 (1869)〉를 보면 섬세하고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짧은 붓질로 큼직한 외곽선만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색을 팔레트에서 섞어 사용한 것이 아닌 순수한 색을 그대로 캔버스에 묻히고 있죠. 빛이 자연에 닿는 찰나의 순간을 짧고 빠른 붓질로 채워나가고 있는데요. 빛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그때그때 담았던 겁니다. 〈그르누예르 (1869)〉에서 모네의 시선이 읽히는데요.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모습도 그렸지만, 모네의 시선은 언제나 자연이었습니다. 인물들은 아주 간결하게 쭉 내리그은 형태이죠. 보다 넓은 시야에서 모네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자연, 특히 물의 표현이었습니다. 물에 반사된 자연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 (1954)> / 클로드 모네, <수상작업실 (1874)>
에두아르 마네, <보트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1874)> /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유람선들 (1875)>

무명의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전시회, 오늘날 제1회 인상파 전시회라고 불리는 파격적인 행사가 끝나고 모네는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로 돌아옵니다. 긴장감의 연속이었던 전시 기간 동안 지친 그는 가족의 품에서 휴식이 필요했죠. 아르장퇴유는 자연과 현대 도시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는데요. 적막한 자연 속에서 빠르게 산업화되고 있던 공장과 굴뚝과 같은 흔적도 찾아볼 수 있죠. 매년 도시 국제 요트 레이스가 펼쳐지는 보트 놀이 명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모네도 이곳에서 정박해 있는 요트를 작품 속에 남겼죠.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1872)〉를 보면 경기가 벌어지던 현장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 특히 물의 표현에 집중했던 모네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데요. 바로 집 앞만 나가면 그토록 원하던 물에 반사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그에게 작품은 아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네는 더 가까이에서 물의 표면을 바라보고 그리고자 직접 수상 작업실을 만듭니다. 


〈수상 작업실 (1874)〉를 통해 모네가 사랑한, 그만의 작업실을 볼 수 있죠. 보트에 이젤을 고정시키고 지붕을 만들어 이 보트를 타고 센강을 따라 아르장퇴유의 곳곳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르장퇴유에는 모네와 이름 비슷한 선배화가 마네도 머물고 있었는데요. 마네에게 야외에서 그리는 풍경화를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모네였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선상 작업실을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마네의 작품 속에서 수상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네를 확인할 수 있죠. 에두아르 마네, 〈보트 스튜디오에서 그림 그리는 클로드 모네 (1874)〉에서 아내 카미유와 함께 보트를 타고 그리고 있는 모네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모네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아내와 함께 보트를 타고 있어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그리고 있나 싶었는데요. 자세히 보면 사람의 얼굴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모네가 그리고 있는 풍경은 바로 〈아르장 퇴유의 유람선들 (1875)〉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앞에 두고도 모네의 못 말리는 자연 사랑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모네는 평생 자연에 비친 빛 그리고 특히 물에 반사된 자연 풍경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르장퇴유에서의 풍경화는 아직 물의 표현이 완벽하지 않은데요. 〈아르장 퇴유의 유람선들(1875)〉은 물의 표면에 너무 사진처럼 또렷하게 반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물에 반사된 형태는 이렇게 거울처럼 또렷할 수 없죠. 반면, 〈아르장퇴유의 요트 레이스(1872)〉은 너무 두루뭉술한 형태인데요. 아르장퇴유에서의 시기는 모네가 자연과 빛에 빠져들고 그중에서도 “물”이라는 주요 소재를 찾아 연구하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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