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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불꼼장어 그리고 대선

처음 꼼장어를 먹었을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꼬들꼬들하면서 야들야들한 그 식감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엔 어른의 음식을 먹어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을 가지고 최근 짚불꼼장어를 먹으러 갔다. 기장 맛집을 찾던 중 로컬 느낌이 물씬 나는 꼼장어 구이 사진에 이끌려 기장 앞바다로 갔다.


택시에서 내리지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 매캐한 짚불 연기. 꼼장어 가게에서 나는 짚불 연기를 뚦고 2층으로 올라가 테이블을 잡았다.


“사장님, 짚불 곰장어 2인분에 대선 하나요!”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니 흰 접시에 까맣게 탄 무언가가 무더기로 쌓여나왔고, 손질 후 불판에 올라왔을 땐 내가 알던 꼬들꼬들한 꼼장어로 재 탄생되었다.


“꼼장어 쓸개 드셔보셨어요? 엄청 쓴데 몸에는 좋거든요.

한쪽에 몰아놓았으니, 마지막에 드세요.”


예전에 먹었던 꼼장어의 고소한 맛을 생각하며 철판 위에 있는 꼼장어 한 조각을 집어먹었다. 새카만 검은 색이 떠오르는 씁쓸한 맛이 혀끝에 먼저 맴돌았다. 고되게 일하고 집에 돌아온 어른의 삶을 먹는 기분이다. 고소한 맛이 아닌 이질적인 쓴맛에 깜짝 놀랐다.


쓴 꼼장어를 먹고 있으니 어디선가 들었던 꼼장어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꼼장어 구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꼼장어 가죽은 공업용 어피로 사용됬는데 가죽이 부드럽고 질이 좋아 일본군의 모자 테, 나막신 끈, 지갑이나 구두 가죽으로 사용됬다고 한다.


가죽만 벗기고 버려진 꼼장어 살을 배고픈 사람들이 구워 먹었고, 6.25전쟁 전후 피란민들에게 구워 팔았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무도 먹지 않았던 꼼장어. 그 꼼장어를 구워 먹었던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것 같아 짚불꼼장어의 맛이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나 둘 꼼장어를 집어먹다보니 이제 쓸개부분만 남았다


‘쓸개가 쓰면 얼마나 쓰겠어!’


라는 생각에 호기롭게 하나를 집어 먹었고, 마치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것 같은 짙은 초록색 주머니가 입안에서 터지며 쓰디쓴 쓸개의 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그 순간 식욕이 뚝 떨어졌다. 왜 마지막에 먹으라고 하는 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쓴 걸 먹는 사람들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쓸개즙을 소주에 타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주의 쓴맛이 쓸개의 쓴맛을 잡아준다는데 나는 도전할 엄두조차 안난다.


그렇게 철판의 한 귀퉁이에 모여있던 쓸개는 처음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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