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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순 장아찌

혼자 가는 여행의 외롭고 새로움.


퇴사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여행이었다.

'풀과 나무가 가득한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

나무를 생각하니 한옥이 떠올랐고, 부산에서 가장 가깝고 한옥이 많은 경주로 떠났다.

계획 없이 무작정.

혼자서.



혼자 가는 여행은 새롭고도 외롭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고, 어떤 어이없는 상황들이 일어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재밌다.



하지만, 역시 대화 나눌 상대가 없다는 점과 밥을 혼자 먹어야 한다는 점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혼자 밥을 먹을 때 말 걸어주시는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유독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번 경주 여행은 퇴사 후 쉼이 목적이었기에, 상다리 부러지는 한정식이 먹고 싶었다. 자취생이라 그런지, 집밥의 냄새가 나는 한정식이 그렇게 좋다. 그 많은 반찬을 내가 만들진 못하니까, 그런데 따뜻한 쌀밥과 그 많은 반찬을 한입에 넣고 와구와구 먹고 싶으니까. 아무튼 한정식을 먹으러 가는데, 가는 집마다 2인 이상 주문해야 된다고 한다.


한정식을 먹고 싶은 나는 서러웠다.


'혼자서는 못 먹는 음식이라니!'


그러던 와중 숙소 근처에 한정식집이 있어 들리게 되었다.

한정식은 2인 이상이지만, 비빔밥은 혼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곤달비 비빔밥 하나요!"


꿩 대신 닭이라도 먹자.


곤달비 비빔밥은 미역국과 김치 2종류, 비빔 된장과 함께 삼첩반상으로 나왔다. 비빔밥도 맛있었지만, 나는 장아찌가 그렇게 맛있었다.


감칠맛이 도는 깔끔하고 새큼한 맛의 장아찌. 명이나물 장아찌와 비슷한 맛인데 식감은 다른, 이 장아찌가 그렇게 맛있었다.


'아주머니, 장아찌 조금만 더 주세요! 너무 맛있네요.'


장아찌를 한 번 더 리필해 먹었다.


한참 먹다 보니 명이나물 장아찌는 아닌 것 같았다. 명이나물 장아찌는 대나무 잎처럼 생겼는데, 이 장아찌는 오독오독 씹히는 길쭉한 줄기가 있다.


너무 궁금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용기 내서 여쭤보았다.


"아주머니, 이 장아찌 이름이 뭐예요?"

"엄나무순 장아찌예요. 잘 드시네. 조금 더 드릴까요"


"아니요. 많이 먹었습니다! 이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매번 반찬이 바뀌어서 나와요. 다음에 오실 땐 다른 나물이 나올 거예요."


반찬이 바뀐다는 것도 신기했고, 엄나무순 장아찌라는 이름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따뜻해서 좋았다.


경주에서 돌아온 지금도 문득문득 엄나무순 장아찌가 생각난다. 그 감칠맛, 새큼한 간장 베이스의 맛있는 엄나무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슨 나물인지 고민하고, 대화를 나눴던 순간이 따뜻하고 재밌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혼자 가는 여행은 늘 외롭고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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