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비 Dec 15. 2022

[짧은 소설] 그게 뭐가 재미있다고

 예닐곱 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꼬마 너덧이 뛰고 있었다. 어떤 규칙을 정해놓고 노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마구잡이로 서로를 쫓아 뛰는 것으로만 보였다. 들판에 풀어놓은 강아지들 같다,고 주혜는 생각했다. 꺅꺅 새된 소리를 질러대며 무람없이 내달리던 아이들은 어느새 멈춰서 그네를 타거나 잠깐 사라졌다 싶으면 조합놀이대에 연결된 미끄럼틀에서 주룩, 미끄러져 내리곤 했다. 주혜는 저렇게 무작정 뛰는 게 왜 재미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 예쁘죠? 아이들. 

 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나 지을법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며 희준이 물었을 때, 주혜는 아이들 대신 그런 희준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 아이들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 보고 있으면 좋지 않아요? 좋아한다기보다는…… 동경하는 것에 가깝죠. 아이들을. 

 - 동경이요?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뭐 그런 건가요?

 - 비슷해요. 나한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그걸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걸 일깨워주거든요. 잃어버린 걸 되찾아주는 건 귀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귀한 존재죠.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희준이 하는 말을 듣던 주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글 짓는 사람들이 좀 별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다. 희준이 쓰는 말의 대다수는, 영 이상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적인 대화와는 반 발짝쯤 떨어진 느낌이었다. 되물어봤자 자기만 자꾸 멍청해지는 기분이어서, 몇 번 겪은 뒤로 주혜는 그냥 그러려니 넘겨버리고는 했다. 그래도 오늘은 좀 물어봐야겠다, 주혜는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만남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그런데요, 희준씨.

 - 네?

 - 아이들을 동경한다는 건 잘 알겠는데요. 

 그제야 희준의 눈길이 주혜의 눈에 가 닿았다. 

 - 우리는 왜 매번 이런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거죠? 여긴 꼬맹이들이나 노는 곳이잖아요.     

    

 글 쓴다고 직장 때려치우고 삼 년 만인가? 올해 초에 신춘문예에 당선돼서 소설가가 됐대. 집이 좀 살아. 지하철역 근처에 사 층짜리 건물이 있다니깐, 외아들이고. 당장은 벌이가 없지만 그 정도면 평생 걱정 없지 뭐. 게다가 혹시 알아? 베스트셀러라도 써서 대박 날지.  

 지은 언니는 끈질겼다. 상담 전화가 쉼 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짬이 날 때마다 주혜를 꼬드겼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권유에 주혜가 결국 한 번 만나나보자, 결심한 건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내년이면 서른아홉이라는, 마흔은 넘기지 말아야한다는 모종의 불안도 등을 떠밀었다. 사실 소개가 들어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주말도 없이 이십사 시간 삼교대로 운영되는 콜센터 상담사에게 연애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희준을 처음 본 건 지하철역이었다. 카페도, 레스토랑도 아니고 아차산역 사번 출입구 앞에서 만나자던 희준은 처음 만난 주혜를 데리고 다짜고짜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그게 또 뜻밖에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주혜는 그런 심정으로 피식 웃으며 희준을 따라나섰다. 동물나라에서 미어캣과 작은발톱수달, 일본원숭이와 침팬지, 캥거루와 얼룩말을 구경했고, 재미나라에서 놀이기구를 타자는 걸 주혜가 간신히 사양했고, 대신 자연나라로 향해 야생화를 구경하며 함께 걸었다. 가는 곳 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구경 온 꼬마들과 마주쳤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꼬마들은 연신 배를 잡고 웃어댔다. 

 오랜만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한참을 걸은 주혜의 발이 홧홧해지고, 그게 슬슬 짜증으로 바뀔 때 즈음 둘은 벤치에 앉았다. 희준이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가더니 양손에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돌아왔다. 주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초콜릿 맛이었다. 

 - 놀이공원을 좋아하시나 봐요.

 - 좋죠. 볼거리도 많고, 재미있잖아요. 주혜씨는 안 좋아하세요?

 -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와봤네요. 참, 소설 쓰신다면서요?

 - 네. 소설 좋아하세요?

 -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창작하는 분들,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엄두도 안 나네요.

 - 주혜씨도 예술가예요.

 - 네?

 - 인간은 누구나 원래 예술가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주혜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안 희준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꼬리는 처지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것이 금방이라도 뛰쳐나가 꼬마들과 함께 내달릴 것 같은 표정이라고 주혜는 생각했다. 

 - 저기 아이들 보이시죠?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역할을 정해서 연극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예술가였던 거죠. 크면서 그걸 잊어버린 것뿐이고요.  

 - 아…… 네…….

 - 참, 그런데 그거. 

 - 네?

 - 콘이요.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될까요?        


 또래가 아니라 한참 어린 동생과 만나는 기분이 종종 들었다. 근사한 곳에서 식사도하고 어른답게, 그렇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자, 했다가도 또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어서 주혜는 쉬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지은 언니의 끊임없는 부추김도 한몫했다.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게 뭐가 이상하니? 애들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더라. 고작 몇 번 만나보고 어떻게 사람을 알겠니. 조금 더 만나봐.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라며……. 어느새 한낮의 뙤약볕은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아이들 노는 곳은 그만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다음날 저녁, 교대 시간에 맞춰 희준이 불쑥 주혜의 회사에 찾아왔다. 근처 주차장에 세워둔 고급 승용차를 본 주혜는 내심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희준이 차를 몰아 간 곳은 멀지 않은 곳의 한 초등학교였다. 의아해하는 주혜의 손목을 잡아끌고 희준은 학교 운동장에 섰다. 화가 나는 건지, 기가 막힌 건지 모를 기분에 주혜는 피식, 웃음이 났다. 해질녘 너른 운동장이 휑했다. 

 - 초등학교라. 연령대가 조금은 올라갔네요? 여긴 왜요?

 - 놀이터는 아무래도 좀 좁아서요.

 - 네? 

 그때였다. 희준이 손바닥으로 쩍, 소리가 나도록 주혜의 등을 후려쳤다. 그러곤 달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달아나던 희준이 뒤돌아서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저런 또라이 새끼가…… 하마터면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잡아 봐요, 잡아봐. 그 순간, 주혜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될 대로 되라 싶기도 했고, 짜증도 좀 나는 것이, 일단 저 자식을 쫓아가 잡고 봐야겠다, 뭐 그런 복잡한 심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게 스친 것이 등까지 떠밀어 어쨌든 주혜는 이를 앙다문 채 달렸다. 잡히면 죽을 줄 알아요. 오, 잘 뛰네요. 잡아 봐요, 잡아봐. 

 한낮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뜨스한 운동장을 달리다보니 이마와 등줄기엔 금세 땀이 솟았다. 참 오랜만의 뜀박질이었다. 양 다리가 무지근해왔지만 주혜는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무작정 뛰는 게 왜 재미있다는 건지 어쩐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기분 까지도. 저물녘 어스름에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했다. 주혜는 자꾸 웃음이 났고, 희준을 좀 더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자가 길쭉해졌고, 둘은 아마도 그것마저 재미있었다. ■

작가의 이전글 [소설 리뷰] 내 반쪽이 내 반쪽을 싫어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