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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Jan 05. 2018

인생이 ‘발레’같더라

02. 발레를 통해 배우는 삶의 원리

작년 여름이 끝나가던 때,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다. 배우게 된 동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실연의 공허함.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느덧 발레를 시작한지 1년을 넘어가고 있다. 취미발레에서 1년이란 사실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내가 발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만큼 꾸준히 하게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을 따라했던 첫 수업시간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1년이 넘는 시간 발레를 배우며 몸과 정신이 한결 건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이제는 배에도 미약한 복근이 느껴지고, 허벅지에도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발레가 좋았던 것은, 발레를 하면서 삶의 자세를 생각해보게 하는 통찰의 순간들이 종종 있다는 점이다.



영화 <Billy Elliot>
1. 기초가 중요하다.

기본을 닦는다는 것을 얼마나 지루한 일인가. 피아노를 배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한반복 하농의 지겨움을! 하지만 기초 음계를 자연스레 짚을 수 있는 연습과정이 없으면, 원하는 곡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가 없다. 모순적이게도, 예술의 세계에서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속박의 시간이 필요하다.


발레도 마찬가지다. 기초가 없고 단련되지 않은 몸은 매번 한계에 맞닦뜨리게 된다. 설령 흥미가 떨어질지라도 당장에 동작을 배우기 보다는 발레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몸으로 무리하게 동작을 따라하다보면 소중한 신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발레는 참 엄격한 예술이다. 기본기가 없다면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모든 만사가 그러하듯, 기초가 없으면 쉽게 허물어진다. 발레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곱씹어 보는 것이 기초의 중요성이다. 발레도, 인생도 탄탄한 기초가 무기다. 지리한 시간의 반복,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다져진 기초의 시간이 내공이자 힘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2. 정직하게 나의 길을 걷는다.

기초를 잘 닦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발레에서 지름길은 없다. 고통스럽고 느리더라도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다 보면 가끔 좌절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그렇지 않은 데서 묘한 박탈감을 느끼게 될 때다. 취미발레는 경쟁하고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멘탈을 부여잡지 않으면, 과하게 욕심을 내거나 타인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의 끝은 늘 부정적인 감정이다.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


안타깝게도 단기간 내에 발레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편법이 통하지 않는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발레를 꾸준히 배운다면, 오히려 이런 깨달음이 있다. 우리의 출발선을 제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속임수를 쓰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취는 없을지 몰라도,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뿌린 씨앗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3. 고통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신장시키기 위해, 다 굳은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1시간의 수업동안 고군분투하고 있노라면 내 몸을 엉망진창으로 내버려두었던 지난 날을 후회하게 되기도 하고, 그냥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뻗으라고 말씀하신다.


근육이 달달 떨리며 내가 당최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의식되지 않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 1초를 버티는 힘. 그 힘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바로 기회!" 라는 것.  (참고:https://blog.naver.com/ewhaballetin/220832796794)


비단 발레 클래스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그런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 이쯤이면 꽤 버텼으니 포기해버리자,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들. 하지만 발레는 내게 말한다. 그때가 오히려 기회라고. 우리가 한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 그러니 고통스럽다고 포기하지 말자. 힘들다고 놓아버리지 말자.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다. 



4. 외유내강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발레리나는 가냘프고 마르고 여리여리하다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면서 발레리나들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끝으로 춤을 추며, 슈즈가 피로 물들어도 표정은 변함없다. 공기처럼 날아다니며 하늘하늘 우아하게 춤을 추지만, 취미발레를 배워본 사람이라면 안다. 몸안에 강력한 힘과 에너지가 없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우아함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한 수많은 자기와의 싸움을 거쳐 내공을 쌓은 발레리나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무대에서 숨긴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 속에 숨겨진 강인함과 단단한 내면. 이러한 발레의 특성이 내 삶에도 묻어나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발레리나 몸안의 강력한 코어에너지가 없다면 우아한 동작이 불가능한 것처럼, 타인에 대한 유연한 자세는 그 어떠한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면 주관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에만 갇혀있다면 딱딱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타인에게 관대하되 휘둘리지 않고, 내 중심을 꽉 잡을 수 있도록 나에게는 엄격한 외유내강의 사람. 우아하지만 강한 사람의 자세를 발레에서 배우게 된다. (참고:https://blog.naver.com/ewhaballetin/220619477507)




자기계발서같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매 수업시간마다 이런 삶의 원리를 생각하게 되니 발레는 비단 신체만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수양의 기능도 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발레를 배우면서 삼은 최우선의 목표는 ‘즐겁게 하는 것’이다. 오로지 발레를 하는 시간은 나에게만 집중하고, 땀흘려 움직이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은 쏟아내는 것. 잘 되지 않아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하게 하는 것. 그 기쁨의 시간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더없이 소중한 취미가 될 것이다. 경쟁과 비교 속에서 발레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발레가 안겨주는 삶의 원리를 매 순간 내 몸과 마음과 삶으로 체화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 위 글은 발레 수업을 통해 들었던 내용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3. 고통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4. 외유내강> 의 내용은 제가 수업을 듣고 있는 센텀이화무용학원의 원장선생님 지젤님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ewhaballetin) 포스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참고

에피소드 58 : https://blog.naver.com/ewhaballetin/220832796794

에피소드 50 : https://blog.naver.com/ewhaballetin/22061947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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