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작은 근육까지 완벽하게 사용하기
성인발레 클래스는 어떤 순서로 진행될까? 지도하는 선생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리라 본다. 우선 클래스가 시작되기 전 일찌감치 도착해서 각자 몸의 관절을 풀면서 체온을 높인다. 충분히 관절을 돌리고 나면 스트레칭을 하며 곧 시작될 수업에 임할 준비를 하게 된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학원의 level 1 클래스는 수업이 시작되면 어깨와 발가락, 발등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발레를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발가락도 스트레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 선생님이 발가락 스트레칭을 알려주셨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아하게 흐르고 있는 클래식 음악과 달리, 내 얼굴은 생전 처음 느껴본 고통으로 울 그락 불 그락 하고 있었다. 마치 여기에 근육이 있다는 걸 그간 몰랐냐고 발등과 발가락이 소리치는 것 같았다. 어깨도 마찬가지였다. 수건의 양끝을 붙잡고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뒤쪽으로 돌리다 보면 백 년간 기름칠을 하지 않아 뻑뻑하게 굳은 기계처럼 관절이 덜그럭거린다.
발레를 하면서 찬찬히 내 몸을 들여다본다. 제대로 바라본 적 없던 발등에도, 발가락에도 근육이 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관절이 있는데, 늘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있다 보니 관절이 녹슬고 있다. 어릴 때의 유연하던 몸은 세월을 지나 무신경하게 방치해둔 탓에 이토록 삐걱거린다. 그렇게 내 몸을, 지나온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플로어에서 각각의 근육을 이완하고 강화하는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끝내고 나면, 기다란 바(bar)를 붙잡고 동작을 배우거나(barre work) 센터에서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수업의 후반부로 갈수록 에너지의 사용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발레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완성될까? 그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작은 '디테일'에 있을 것이다. 막상 발레를 시작해보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특히 힘든 점은 남들은 미처 모를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발끝부터 손끝, 일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속근육, 시선, 표정까지, 어느 것 하나 놓쳐서는 안 된다.
문득 수업 중에 선생님의 발을 본 적 있는데, 발의 움직임이 물결치는 것처럼 너무나 부드러웠다. 새삼 느꼈다. 발레는 가혹하다. 발 근육 하나하나 세심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대충의 움직임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전문 무용수라 할지라도 스스로 100% 만족하는 춤을 추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엄격하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장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발레 동작의 완성은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곳에서 시작한다. 폴드 브라(port de bra, 팔의 움직임)가 아름다우려면, 포인(pointe, 발등을 밀어 다리에서 발등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룬 발 모양)이 아름다우려면, 아라베스크(arabesque,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발레의 대표적인 동작)가 아름다우려면? 모두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탄탄하고 바르게 잡힌 속근육에서 시작해야 한다. 손끝과 발끝을 1mm 더 뻗고, 허벅지를 0.1도라도 더 돌려보고, 어깨는 조금이라도 내려보는 그런 작고 세밀한 노력이 꽃피우는 게 발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밖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 작고 작은 노력을 더할 때, 그런 섬세한 노력은 그간의 땀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것이다. 무대 위 발레리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