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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May 23. 2019

어른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영화 <미스 스티븐스>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도 외로울까?


평범하게 굴러가는 일상에서 나의 시선이 타인의 내밀한 감정, '외로움'에 닿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반대로 내 마음 한 구석에 늘 자기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차지하는 외로움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고백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미스 스티븐스'로 불리는 29살 교사 레이첼 스티븐스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화는 교사 레이첼이 연극대회에 참여하기 원하는 3명의 학생들을 인솔하는 며칠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 명의 학생들은 어떻게 보면 성장 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학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적극적인 모범생 '마고',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샘', 왠지 모르게 사연 있어 보이는 '빌리'까지. 하지만 이 영화의 성장 주체는 3명의 학생보다 교사 레이첼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을 차에 태워 이동하는 도중에 자동차가 뜻대로 말을 듣지 않자, 동승한 학생들 앞에서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레이첼은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마주하지는 못한다. 홀로 누운 침대에서 엄마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를 들척이기도 하고, 살아생전 엄마가 참여했던 연극을 본 이후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할 만큼, 엄마의 죽음이 그녀에겐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이 슬픔을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꿀꺽꿀꺽 혼자 삼켜버리고 만다.


때문에 레이첼은 자신 내면의 목소리는 꾹 눌러 버리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선도해야 하는 교사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연기에 재능이 없음에도 연극부가 사라지는 게 싫은 마고는 몰래 자비를 털어 친구들을 이끌고 왔다. 하지만 무대에서 대사를 잊어버리고 만다. 레이첼은 대회에서 실수한 마고를 위로하고, 마고의 속사정을 듣게 된다.


레이첼의 위로는 마고로 그치지 않는다. 사랑에 실패(?)한 샘을 토닥이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행한다. 하지만 두 명의 학생과 달리 빌리는 오히려 선생인 자신을 위로하려 든다. 연극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학교의 지도 교사는 레이첼과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만 레이첼의 삶에 어떠한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이끌고 지도해야 할 학생이 집요하게 내 안의 슬픔을 끄집어 내려하니 당황할 수밖에.


가끔 다른 사람의 눈에서 슬픔을 바코드처럼 한눈에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빌리는 타인의 삶에 오롯이 이입해야 하는 연기적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레이첼의 텅 빈 마음을 감지한다.


"Don't be sad! Don't be sad!"


장난스럽게 뛰어다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빌리를 애써 밀어내 보지만, 레이첼도 안다. 실은 위로가 필요한 건 자신임을. 학생들을 토닥이고 있는 자신 역시, 삶이 막막하기로는 마찬가지라고.


우리 내면에는 위로받고 싶은 아이가 있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각자의 위치에 걸맞는 페르소나(가면)를 쓰고서 살지만, 아이처럼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안기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정서일 것이다. 사실은 위로받고 싶다고, 날 좀 안아달라고, 어른이 되면 날 것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일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모르겠다.


이 영화의 매력은 커다란 사건 없이도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데 있다. 섬세한 구성과 흐름, 적절히 배합된 음악까지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마치 이음새가 잘 봉합된 예쁘고 편안한 옷을 입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캐릭터에 걸맞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안정감있게 만들어준다. ‘릴리 레이브’는 적당한 선에서 감정을 삼키는 절제된 연기로 레이첼 스티븐스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오가는 빌리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영화에서도 루키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연극대회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기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탁월하게 뛰어나거나, 잊지 못할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영화는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의 잔향이 오래도록 남는다. 미스 스티븐스가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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