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와 나>(2022) 리뷰
*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 <너와 나> / 감독: 조현철, 주연: 박혜수, 김시은
수학여행을 앞둔 여고생 세미(박혜수 분)는 단짝 하은(김시은 분)이 자전거 사고로 함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세미는 병원에 입원 중인 하은을 찾아가 지금이라도 수학여행을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설득한다. 영화 <너와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세미와 하은이 겪게 되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운동장에서 저마다 놀고 장난치는 학교의 풍경은 꿈 같기도, 기억 속 언젠가의 추억 같기도 하다. 불길한 꿈에 눈물을 흘리며 잠에서 깬 세미는 하은을 향한 걱정을 좀처럼 주체할 수 없다. 하필 교정에서 죽은 참새를 발견한 세미는 결국 학교 밖을 빠져나와 하은을 찾아간다. 하은과 함께 떠들고 장난치는 가운데에도 내심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세미는 하은을 보채고 다그치는데, 영화는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사춘기 풋사랑의 서투름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좋은 걸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맛있는 게 있으면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상대가 걱정되고 염려되는 마음, 아프고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을 모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 영화는 온통 사랑의 흔적이다. 화면 가득히 담긴 빛처럼 영화 가득 사랑이 쏟아진다. 찬란한 빛 속에서 사물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영화 <너와 나>에서는 현실과 환상, 시간과 공간, 인간과 생물의 관계, 삶과 죽음, 나아가 너와 나의 경계마저 희미해진다. 희미해진 경계, 그 틈으로 스며드는 것은 빛처럼 따뜻한 사랑이다.
영화는 세미와 하은의 사랑이라는 큰 줄기를 좇아가면서도, 이들만 비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미와 하은을 비롯한, 경계 없는 사랑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투닥거리지만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세미의 가족, 세미의 말에 응답하는 앵무새 조이,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는 아주머니, 하은의 스토커를 혼내주려는 친구들, 할머니와 산책 중인 어린 아이가 발견한 공룡 장난감 등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대상은 성별, 관계, 종류(?)를 뛰어넘는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영화가 조용히 관찰하고 담아내는 일상의 풍경처럼 정겹고 다정하다.
세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라는 경계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진정으로 닿는 법을 배운다. 영화 속 주요하게 등장하는 거울은 너가 나가 되고, 내가 너가 되는 사랑의 원리를 비춘다. 주체가 뒤바뀌는 의미심장한 ‘꿈’의 메타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 역시 세미가 되기도 하고, 하은이 되기도 한다. 거울 속 '너'는 영화를 보는 '나'의 가족이 되기도, 애인이 되기도 하고, 반려동물이 되기도, 애틋한 애장품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름 모를 이들이 되기도 한다.
상처를 들추지 않고, 사랑을 담아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하는 영화의 조심스러운 의도로 인해 (나를 포함한) 몇몇 관객들은 뒤늦게 눈치채게 될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새 우리는 세미와 하은이 맞이할 '내일'을 직감하게 된다. 영화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시계 속 시침과 분침은 우리 사회가 겪었던 아픈 사건을 가리킨다. 관객 모두가 이들의 운명을 알아챌 무렵, 세미가 앵무새 조이에게 가르치려 한 말이 영화관을 가득 메운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희미해진 경계와 달리, 영화의 메시지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경계 없는 사랑으로 기억하겠노라는 그 메시지가, 경계 너머 그곳에서 쉬고 있을 이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엔딩 속에서 메아리처럼 번져나가는 '사랑해'라는 말이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마다 맺힐 때, 아마도 영화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까.